추석 맞이 특별식
우리 엄마의 특성인지 아니면 충청인들의 특성인지 모르겠는데 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네, 아니오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뜨뜻미지근하게 "봐서~"라든지, '"좀만 기달려보고" 라는 말만 계속했다.
당장 50원짜리 신호등 사탕이 먹고 싶어 죽겠는 꼬마는 엄마 지갑에서 쌀 그림이 그려진 동전을 빨리 빼서 구멍가게 앞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엄마는 절대로 그래, 알았어! 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안 그래도 성질 더럽게 급한 나는 그게 너무 짜증이 났다. 될 때까지 한다는 심정으로 "아, 엄마아~~~~"를 외치며 몸을 배배 꼬았다. 몸을 비틀었을 때 운동화 고무 밑창이 땅바닥에 닿아 쓸렸던 살짝 타는 냄새와 촉감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니, 딸을 이렇게 성질 급한 휴먼으로 낳아놓고 본인은 그렇게 검은색도 흰색도 아니게꼬롬 말을 하시면 어쩐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내 기억에는 엄마가 돈을 줄 때와 안 줄 때가 반반이었다. 저렇게 애타게 해 놓고 나중에 줄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말하는 "봐서"는 딱 잘라 '안 준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거다. 더 미쳐... ㅋㅋㅋㅋ
주말에 뭐를 해 먹는다거나, 김치를 담글 때에도 한참 버무리다가 이러신다.
"고춧가루가 더 있으야나..."
'있으야나'가 뭐여... 있으면 있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데 나는 이게 '가서 고춧가루 더 가져오라'는 뜻이라는 걸 정말 나중에야 알았다.
오늘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토란국을 만들어 먹어봤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 제사 때도, 조금 더 커서 우리집 제사나 차례 때도 상에는 단 한 번도 안 올라왔던 음식이었다. 뿐인가. 신기하게도 시댁을 전국 팔도로 몇 번이나 바꿔가면서 제사와 차례를 지냈었는데, 단 한 번도 토란국 먹는 집에 당첨된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어느 순간 토란국에 대한 호기심이 났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사람들은 평소의 소고기 뭇국처럼 자주 안 해 먹는 걸까. 그리고 어떤 식재료이기에 다듬는 것도 힘들다고 하고, 손에 뭣도 나고 아릴 수도 있다는 걸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시장길 산책을 하는데, 채소가게 할머니가 이 토란을 딱 야무지게 까서 물에까지 완벽하게 담가 놓으신 것을 봤다. 살까 말까... 그러다가 괜히 일 크게 키우지 말자, 하고 털레 털레 돌아왔다. 그런데 오후 내내 삼삼하게 생각이 나는 것이다. 에라이~ 나가 사자!
국거리용 소고기까지 반 근 떼어다가 와서 끓는 물에 한 번 데치고, 찬물로 씻어내면서 조리를 시작했다.
난생처음 먹어본 토란의 맛은...
딱 우리 엄마 맛.
이건 감자도 아니고, 무도 아녀. 그렇다고 공주 밤 보덤 달도 않고, 아삭도 안혀. 이두 저두 아닌 맛이 대충 우럼마 맛이구먼. 이?
오늘 알게 된 건데, 토란국은 경기도 쪽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경상도는 먹지 않았던 음식이라고 하는 걸 보면, 친가가 경상도 쪽인 우리집은 먹을 일이 없었겠다.
어떤 분은 이북 사람들은 토란국 명절 때마다 꼬박꼬박 해 먹는다고 하니 뿌리채소의 특성상 일단 우리나라의 허리 이북 쪽으로 올라가면서 많이 즐기는 음식이었을 듯하다.
오늘 내가 토란국 도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소고기 뭇국과 조리법이 동일하다'는 댓글 하나였다.
게다가 손질된 토란을 사 왔는데도 진액이 끈적하게 남은 터라, 끓는 물에 넣어서 데친 후에 차가운 물로 헹궈냈다. 그 전처리 외에는 소고기 뭇국과 똑같이 만들었다. 소고기를 마늘과 간장에 저며 놓으라는 조리법도 있지만, 나는 그냥 참기름에 볶았다. (다들 아시는 공정이겠으나, 혹시나.... 맑은 탕국은 이렇게 고기를 볶아서 물을 붓지 않으면 국물이 몹시 지저분해진다. 먹는 데에는 전혀 지장은 없으나... )
그러면, 모두들 맛있게 드세요.
파는 아무리 뒤져도 없어서 못 넣었다.
맛없어 보이는 건 아는데, 이상하게 나이 들면서 이렇게 밍밍한 국물, 슴슴한 양념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