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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정 Oct 04. 2022

부모인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서 사춘기 부모로 살아남기 

부모교육은 아이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부모님들이 세상 사춘기는 저 혼자 다 보내는 것처럼 유난스럽고 까칠한 아이를 보면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쟤가 정녕 내 사랑스러운 아이와 같은 아이가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전과 달라진 모습의 아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마음은 늘 한결같지만 말처럼 행동이 되지 않을 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낯선 아이의 모습에 상처받고 속상한 날이 있다면!     

좀 더 나은 메시지를 영양제 삼아 아이들과 지금의 이 길을 나란히 걸어갈 수 있길 바라며 이야기 시작합니다.          

부모는 알다가도 모를 10대의 마음     


방금 전까지 신나서 웃는 것 같더니 금세 짜증 가득한 얼굴로     

"정말 싫다"     

"하기 싫다"     

를 끊임없이 내뱉는 아이들.    

 

그네들이 바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혹은 마주하고 있는 10대 아이들의 현주소이다.          

유아기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울음부터 터뜨렸던 아이들의 심리와 유사하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결정적 차이는 유아기의 아이는 단순한 이유에서 감정을 표출했다면 지금 사춘기 증상을 보이는 내 아이는 넘치도록 복잡해서 A+B=C라는 단순 연산 방식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갑자기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는 아이.     

갑자기 기분이 좋아 세상 이렇게 즐거운 아이가 없다 싶은 아이.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살벌한 표정을 짓는 아이.     

이 모든 모습 역시 내 아이다.     

그리고 아이의 내면 깊은 곳에는 나를 봐달라고 울음을 터뜨리던 유아기 시절의 그 아이도 함께 존재한다.          

              

내가 지금 좀 힘이 든다고,     

내 감정을 나도 잘 모르겠다고,     

엄마가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은 돌출되는 행동과 언행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춘기 아이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다 이해하려 애쓰지 말자. 

사춘기 아이의 행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때도 부지기수고, 태도가 거슬리거나 버릇이 나빠 보여 지적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건 당연한 일상이다.

     

왜 이런 행동을 표출하는지 일일이 아가 때처럼 나에게 다 얘기해 주지 않는 이 아이들에게     

지금부터 '무조건 통하는 이 방법'을 사용해 보자.          


부모의 말, 그것에서부터 아이는 달라진다.     


아이에게 한결같은 태도와 말투 그리고 네가 쉴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을 말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일컬어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잘 아는 선생님의 말을 인용해 보면 내 자식에게 하는 10%만 부모에게 잘하면 나라에서 지역에서 효자상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넘치는 나의 사랑을 이제는 재정비해 보자.     

과하지 않게 거부감 들지 않게     

'엄마는 항상 널 응원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의 지나친 애정표현을 알레르기 반응처럼 부끄러워하고 거부감을 보인다.     

자기를 아기 취급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이런 애정공세가 낯 뜨겁다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이 일 방향이 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상대방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나만의 짝사랑이 되어 버린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원하는 만큼.     

그이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만큼.     

그렇게 전달해 보면 어떨까?          

물론 넘치는 자식 사랑을 시시콜콜 아이에게 다 얘기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을 다 이해하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안다면 긴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적당한 거리에서 한결같은 응원단장이 되면 된다.     

물심양면으로 아이를 도울 일들에 대한 고민과 행동은 오로지 내 몫으로만 돌려놓고서 말이다.               

아이들은 기운이 빠지거나 용기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낸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줘요.'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세요.'     

'내가 선택한 것들이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     

.     

.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으로 아이를 응원해 주자.     

타인과 비교하지도, 타인을 비하하지도 말자.     

그저 지금 내 아이가 잘한 일들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응원하자.     

아이 스스로 그동안 노력했던 수많은 과정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나씩 집어주자.     

그리고 너의 이런 점이 엄마는 참 자랑스럽다. 대견하다. 이야기 전해주자.          


과한 리액션이 필요한 날도 분명 있다.     

요즘 딸이 나에게 '엄마는 말에 왜 그렇게 사투리를 많이 써?"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평소에 나는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아이가 한 번이라도 더 웃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좀 더 웃긴 표정에 좀 더 재미난 표현을 찾는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아이는 엄마의 TMI가 싫지 않은지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걸 종종 경험한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내 어머니가 내게 아낌없는 응원단장이 되어주신 것처럼.     

난 앞으로 한결같이 아이 곁에서 열혈 응원단장이 되어줄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부모님께

힘이 되는 글이 되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이현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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