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는

by 주원

운동을 한다. 보통 하루에 2~3시간 정도 하는데 종목이 다양하다. 고정으로 하는 운동은 레슨을 받는 필라테스와 탁구다. 월, 목 오후에 필라테스를 하고 화, 목 오전에 탁구를 친다. 매일 하루도 안 빠뜨리는 운동은 걷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공복 상태로 러닝머신 걷기를 한다. 보통 30분에서 50분 정도 걷는데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아서 오래 걷거나 뛰면 힘들다.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거나 발바닥이 아프면 걷기를 멈추고 유튜브를 켠다. 최근에 알게 된 운동 유튜버의 설명을 들으며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땀에 젖는다. 이걸 홈트라고 하더라. 또 월, 수, 금 중에 시간이 되면 골프 연습장에 간다.


내가 땀을 흘리는 동안 아이들은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 간다. 운동하는 내 등을 향해 아이들이 인사를 하고 나는 한쪽 팔을 흔들어 준다. 등교 루틴이 아주 간결해져서 좋다. 운동이 끝나고 돌아보면 아이들이 먹다 남긴 아침이며 입었다 벗은 옷들이 반겨준다. 어떤 날은 그 흔적마저 좋고 어떤 날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다. 살짝 땀이 맺힌 상태로 집안일을 시작한다. 보통 주방부터 치운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게 너무 싫어서 제일 먼저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면 빨리 제대로 하는 것이 프로다.


나의 운동은 놀이보다는 경건한 의식에 가깝다. 애초에 운동을 좋아한 적이 없었고 잘하지도 못한다. 십분 이상 걷는 것도 싫어했고 운동에 돈을 쓰는 것도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 6~7년 전 막내 어린이집에 보내고 필라테스를 배우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배에 힘이 들어가자 허리 통증이 줄었고 말렸던 어깨가 펴졌다. 수업은 고통스러웠지만 효과는 상당했다.


필라테스를 마중물 삼아 골프를 배웠고, 탁구를 배웠고, 헬스도 배웠고 홈트도 알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한 건 6년 전 일이고 운동을 매일 두세 시간씩 하게 된 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코로나 이후 시작된 나의 불면과 불안에 운동이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조금씩 늘린다는 것이 이렇게 되었다.


자고 싶었다. 운동 이후에 오는 피로감으로 밤에 잠잘 수 있기를 바랐다. 운동을 한 날은 확실히 쉽게 잠이 들었고 푹 자기도 했다. 다른 장점도 있었다. 활력이 생겼고 체력이 좋아져 짜증도 줄었다.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필라테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50분 수업을 들으면 집에 와서 3시간씩 쓰러져 잤는데, 지금은 1시간 걷고 바로 필라테스를 하고 집에 와서 또 운동을 해도 멀쩡하다. 잘 자려고 운동을 하나하나 늘렸는데 어느 순간 밤에 잠이 쏟아지지 않았다. 불면은 잊을만하면 베개 위로 찾아왔다. 체력이 너무 좋아진 걸까? 대체 몇 시간 운동을 해야 잠이 올까? 좌절감이 들었다. 어차피 못 잘 거면 이 힘든 거 그냥 다 때려치워 버릴까 생각도 했다.


그래도 했다. 사실은 운동 말고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다시 수면제를 처방받으러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밤낮으로 운동을 하고 수면유도제를 먹고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있었지만, 버텼다. 몽롱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다 몸이 한계에 오면 기절하듯 두세 시간 잠이 들었다. 그런 날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서 다시 운동을 했다. '낮잠은 안돼!' 되뇌며 천근 같은 발을 러닝머신 위에 올렸다. 발악일 수도 집착일 수도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탁구공을 세게 칠 수 있게 되었다. 골프도 폼이 제법 좋아졌다. 마르고 가늘었던 다리에는 근육이 조금 붙었다. 탁구 대회에 나갈 것은 아니고 골프 선수가 될 것도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운동한다. 필라테스 가는 날이 제일 싫고 매일 운동해야 한다는 것이 천형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한다. 그러다 보면 선물 같은 잠이 찾아오고 나는 경건히 받는다.


최선을 다 하는 내 삶에 운동은 늘 포함될 것이다. 하루를 운동으로 채우는 것은 남편의 사회적 지위나 아이들의 성적보다 내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나는 프로 운동러다.





exercise-machine-4565410_1280.jpg 사진출처: 픽사베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뛰는 놈 위에 나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