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Oct 09. 2024

싸우면서 큰다는 말

 둥이는 내성적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주로 집에서 논다. 막내는 씩씩하다. 혼자서 놀이터도 잘 가고 심부름도 잘한다. 남들이 부당한 말을 하면 절대 지지 않고 제 주장을 한다. 따박따박 말대꾸도 잘하는데 듣고 보면 맞는 말일 때가 많다. 둥이 언니들과 2대 1로 싸우는데도 기죽지 않고 맞서 싸우는 바람에 언니들이 기가 질려 울 때도 많았다. 딸 셋 싸움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냐 하는 생각을 한다면 대단한 오해다. 우리 집 딸 셋의 싸움은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와서 구경할 정도는 된다.


 그날도 사소한 갈등으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셋이 함께 자는데 매일 자는 자리가 바뀌는 모양이다. 막내는 가운데 자리라 하고 언니들은 아니다 하며 시작된 싸움은 점점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언니 하나와 막내의 싸움이 2대 1로 커져서 거의 치고받고 하는 수준이라 개입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지성인이다.'주문을 외우며 고상한 목소리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싸움을 멈추라고 지시했다. 3초 정도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은 이내 아랑곳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것들 봐라. 엄마를 무시해?' 나는 화가 나서 큰소리로 혼을 내기 시작했다. 어디 엄마 앞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싸우느냐. 이유를 들어보니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렇게 자매지간에 싸울 일이냐. 눈을 매섭게 뜨고 호통을 치자 둥이는 금방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억울함인지 죄책감인지 알 길은 없으나 고개도 들지 못하고 우는 아이들을 보자 마음이 약해지기는 개뿔. 한번 입이 터지자 멈출 수가 없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했는데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무슨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속으로 '이걸 어쩌지? 어머 나 완전히 꼰대 같아. 어떻게 마무리하지?' 걱정하고 있는데 막내가 계속 내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민망하기도 하고 쪼그만 게 벌써 이렇게 엄마 설교를 듣기 싫어 저러나 괘씸한 마음이 들어 "뭔데? 뭘 잘했다고 할 말이 있어?" 하는 등의 말을 쏘아붙였는데 막내가 하는 말.


"엄마. 그런데 아까 이게 싸울 일이냐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이게 싸울 일이거든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홉 살짜리 둘과 여섯 살짜리가 그럼 싸울 일이 이런 거 말고 뭐가 있겠는가. 저마다 입장이 있고 주장이 있으니 그걸 가려보겠다고 열심히 싸워대는 것은 잘한다 잘한다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말할 것은 하고 다툴 것은 다퉈서 얻어낼 것이 있으면 얻어내고 양보할 것이 있으면 양보하면 되는 것이다.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듣기 싫다고 화만 낸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기주장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바쁜 아이들한테 무시당했다고 혼자 파르르 떨면서 부당한 설교를 하는 와중에도 막내는 제 할 말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리다고 부당함을 모르지 않는다. 나이가 더 많다고 더 현명한 것은 아니다. 막내야말로 제대로 싸우는 법을 아는 것 같았다. 막내에게 한 수 배운 날이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싸우면서 커야 싸울 줄 아는 어른이 된다. 이제라도 듣기 싫다고 무작정 뜯어말릴게 아니라 제대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줘야겠다. 일방적인 싸움이 되지 않게 하는 법이나, 싸움이 끝났을 때 이 일로 무엇을 배웠는지 깨닫게 해주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이전 01화 명의를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