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터의 성찰
다이어트는 여자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한다.(남자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도 지금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체중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먹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던 덕이다. 식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젊었을 때 누가 내게 말랐다거나 날씬하다거나 말을 해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살이 찌면 덜 먹으면 되고 살이 빠지면 더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여자의 몸은 출산과 육아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벌어지는 것은 어깨요, 굵어지는 것은 허리다. 처지는 것은... 하... 말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를 품기 위해 또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몸이 변화하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살이 찌는 것은 정말 열받는다. 예전이랑 똑같이 먹는데 왜 찌냐고! 몸 전체에 야금야금 살이 찌는데 40이 넘으니 특히 등에 나잇살이 붙는다. 조금이라도 타이트한 옷을 입으면 등에 붙은 군살에 구획이 나뉜다. 브라를 경계로 아래위 주름이 잡히는데 왼쪽과 오른쪽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룬다. 가장 드라마틱한 곳은 복부이다. 한 번 늘어났던 배는 염치도 없는지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운동 갈 때 레깅스를 입으려면 뱃살을 차곡차곡 접어 넣어야 한다. 엉덩이는 또 어떠한가. 한껏 넓어진 골반은 출산을 마친 몸임을 증명한다. 쌍둥이 출산 직전까지도 뒤에서 보면 영락없이 아가씨 같다며 딸의 몸매를 은근히 치하했던 울 엄마도 막내를 낳은 후에는 그 말이 쏙 들어갔다.
나이가 들고 보니 몸이 날씬한 것은 강력한 힘이었다. 타고난 유전자 덕이거나 부지런한 관리의 결과니 말이다. 어느 모로 보나 훌륭하다. 중년의 여자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군살이 보이지 않는 몸과 윤이나는 피부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164cm에 45kg의 아주 마른 상태였다. 라면 하나도 배가 불러서 다 먹지 못했고 위장이 약해서 볼에 살이 붙을만하면 위장병으로 앓아눕느라 살찔 새가 없었다. 결혼할 때쯤엔 48kg였고 아이들 셋을 낳고 나서는 51kg로 정착했다. 체형은 조금 변했지만 여전히 날씬한 아줌마였다. 그러던 내가 코로나 때 체중 앞자리가 바뀔 뻔했다. 다 곱창 때문이었다. 야식으로 먹어 본 곱창에 넋을 잃었다. 매주 최소 두 번씩 기름이 좔좔 흐르는 소곱창구이를 시켜 먹었다. 두세 달 만에, 임신했을 때도 멀쩡했던 허벅지와 팔뚝 살이 터졌다. 맞는 옷이 없어서 임부복으로 입던 원피스를 입으려는데 몸이 들어가질 않았다. 당황한 내게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머리부터 넣어봐."라고 말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지.)
불에 덴 듯 놀라 곱창을 끊었다. 술도 줄였다. 단기간에 찐 살이라 대부분은 빠졌지만 남은 1~2킬로는 빼는 데 거의 2년이 걸렸다.
(이 고생을 내가 잊고 있었다니.)
지난겨울 무릎과 허리 건강을 위해 헬스를 시작했다. 근육을 단련하면 허리와 무릎 통증이 준다더니 과연 효과가 있었다. 몸이 어느 정도 좋아지자 근육 욕심도 생겼다. 근육 1g을 내 몸에 붙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붙지 말래도 기어이 들러붙고 마는 지방에 비하면 말이다.
PT샘 구령에 맞추어 운동을 하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끝나고 나면 내 팔다리를 가눌 수 조차 없었다. 며칠간 근육통에 시달리며 닭가슴살을 챙겨 먹고 중간에 단백질 보충제도 먹었다. 근육량이 얼마나 늘었을까 기대하며 두 달 만에 인바디를 재봤는데 근육량이 거의 늘지 않은 거다. 고생한 보람은 정녕 없단 말인가. 절망하는 내게 선생님이 증량을 권해주셨다. 단백질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는 거다. 나 같은 경우에는 탄수화물도 늘려야 한다고 하셨다. 돈과 시간을 들여 죽어라 운동을 하는데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너무 힘 빠지는 일이다. 나는 근육을 위해서 체중을 늘리기로 결심했다. 눈앞에 탄탄한 허벅지와 엉덩이를 가진 내가 그려졌다.
한 달 넘게 열심히 먹고 운동한 결과 근육 700g 늘릴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체지방은 2kg이나 늘어난 것이다. 도합 2.7kg였다. 허벅지가 조금 탄탄해졌지만 가뜩이나 튼튼했던 상체는 더 건강해졌다.
훅 불어난 체중에 놀랐다. 근육을 조금 더 늘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체지방이 또 몇 킬로가 늘어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증량은 없다고 다짐했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이전으로 돌렸다. 단백질은 특별히 제한하지 않았다. 그리고 1주일 후 놀랍게도 체중이 1kg 늘어 있었다. 체중계가 미쳤나? 아직 뇌가 내 몸이 증량 중 상태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니 살짝 걱정이 되어 단백질도 적당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주일 후 체중은 1kg가 더 늘어 있었다. 이 2킬로는 설마 내가 2년에 걸쳐 뺀 그놈들이 돌아온 건가?
이것은 복리의 마법이었다! 의지를 가지고 늘리던 체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저 스스로 눈덩이처럼 몸을 불리고 있었다.
증량이라니! 엄청난 실수였다. 증량은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의지를 놓으면 일어나는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곱창 사건을 겪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나란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내 의지로 체중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인간은 그저 체중계 위에서 눈을 껌벅이며 꿈이길 바랐다. 현실은 무자비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체중계는 진실만을 말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나의 체중을.
이 글은 더 이상의 체지방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과거를 잊었던 오만한 인간의 처절한 자기 반성문임을 알리는 바이다.
다시는 마음 놓고 빵 먹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