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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Dec 08. 2020

"여보, 약 먹을 시간이야."

"엄마!"

나를 부르는 소리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들릴 저 두 음절이 내 귀에는 가시처럼 박힌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심장이 쿵쿵 내려앉는다. 호흡이 불안정해지며 어지럽다. 수시로 두통이 생긴다. 가끔은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 더 심해지면 속이 뒤집어지며 헛구역질을 한다. 스트레스 반응이다.


 최대한 몸을 낮춰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심호흡을 한다. 잠시라도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는 그냥 지나쳐주면 좋으련만 우리 집 아이들은 포기를 모른다. 이내 나를 찾아내 다시 한번 "엄마!"하고 더 크게 부른다.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귀에 새찬 바람소리가 들린다. 


출처: 픽사베이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지만 아이들이 무언가를 요청하기 위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너무 싫었다. 단순 짜증 수준이 아니었다. 나도 육아라면 경력자 아니던가. 쌍둥이를 낳고 코피 터지는 신생아 육아를 곱절로 하며 산후 우울증도 겪었고,  세 살 터울 동생을 보자마자 엄마 품에 붙어 시위하는 쌍둥이를 어르고 달래 가며 막내도 키웠다. 언뜻 보면 육아에 도가 튼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아의 매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나는 승리의 기쁨이나 안도감 대신 좌절감을 느꼈다. 수유, 수면교육, 뒤집

기, 카시트와 유모차 태우기, 이유식까지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게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도록 울어대는 애들을 겨우 재우고 나면  패잔병이 된 것처럼 몸이 처졌다. 남들 다 하는 일이라며, 돌봄 노동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말은 도움이 안 되었다.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육아에 볕이 든 건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후였다.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의 소개로  독서모임에도 나갔다. 아이들한테 매였던 몸이 풀렸다는 표면적 이유에 더해 이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나를 살아나게 했다. 


출처: 픽사베이


 아이들과 떨어져 나 자신을 들여다보니 육아가 그토록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내가 계획했거나 통제할 수 있는 삶을 편하다 느끼는 나에게 육아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이었다. 유독 예민했던 아이들의 기질도 한 몫했다.  요구사항이 많고 까다로운 아이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2월 말 방구석에 들어앉은 아이들은 6월이 되도록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 다섯 살짜리 막내만 겨우  가정보육 두 달 만에 긴급 보육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쌍둥이들은 3개월가량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 듣다가 드디어 첫 등교를 했다. 이태원 발 집단 감염, 사랑교회 발 집단 감염에 현관문 한 번 마음 놓고 열어보지 못했던 아이들이었다.  전면 등교가 시작된 10월 12일 전까지 엄마와 아이들은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 맞벌이 부부의 애타는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애가 타 힘든 것도 힘든 것이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싸우는 것도 힘든 것은 매 한 가지다.  정해진 일과가 있어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채 온라인 수업만 듣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집에서 애들  돌보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딸 셋 키우기 힘들다 하면 사람들은 아들 셋 보다 낫지 않냐며 위로를 한다. 물론 나은 점도 분명 있겠지만 자매들이 서로를 시샘하며 삐지고 싸우는 걸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도 않다 싶다. 숟가락 하나 놔주는 것도 누구를 먼저 주었다며 울고 엄마는 누구만 사랑한다며 악을 쓰고 운다. 내 그림이 예뻐요 쟤 그림이 예뻐요 하는 질문으로 진땀 빠지게 하는 때도 부지기수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불러가며 요구사항을 늘어놓고 감정을 읽어달라 하소연하는 아이들 시중을 들다 보면 저녁시간도 되기 전에 녹초가 되었다. 밑바닥에 있는 에너지까지 끌어모아 저녁을 차려 먹이면 나는 밥 먹을 힘도 없었다. 저녁 설거지를 하고 목욕을 시킬 때쯤이면 애들 아빠가 도착했다. 이제 한시름 놓나 싶지만, 아빠가 잠시 쉬거나 저녁을 먹거나 통화를 하면 아이들은 이내 나한테 들러붙었다.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는 날이 너무 오래 이어졌다. 


 얼마 전 아이가 사소하게 저지른  잘못에 불같이 화를 내고 돌아섰는데도 분이 안 풀려  돌아가 재차 혼을 냈다. 아이들 눈빛이 싸했다. 잘못된 훈육이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아이들은 내 말소리만 들어도  제 잘못에 대한 적절한 지적인지 부당한 대우인지 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며 남편의 시선을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남편이 소리 죽여 우는 나를 보며 자신이 무엇을 도와주면 되냐고 물었다. "제발  나  혼자 있을 시간 좀 줘." 하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늘 바쁜 남편이 내게 줄 수 없는  하나가 바로 그 시간이었다. 


 우울한 일상에 친정 엄마가 오시는 날은 숨통이 트이는 날이었다. 여기저기 고장 난 몸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오셔서는 신나게 아이들과 공놀이하고 틈틈이 걸레질에 설거지까지 도와주셨다. 그것도 모자라 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한 데가 없는지 늘 살피시던 엄마는 역시 내 변화를  눈치채셨다. "너 왜 웃지를 않니? 이렇게 이쁜 애들을 앞에 두고 왜 그러니?" 하셨다. 생각해보니 애들이 묻는 말에 진심으로 반응을 보인 것이 언제인지 나 스스로  즐겁게 무엇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위염, 식도염, 두통약만 기계처럼 먹고 있었다. 두통약 부작용으로 위 통증이 온 날에는 새벽까지 진땀을 흘리며 앓았다. 통증이 가신 후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날따라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밥 달라고 깨우면 애고 밥이고 그냥 던지고 싶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약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이러해서 병원에 가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지인이 항우울제를 권해줬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천연 유래 항우울제인데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했다. 속는 셈 치고 먹어볼까 하고 약을 주문해 먹은 지 2주쯤 됐을까? 남편이 내 얼굴을 살피며 "당신 얼굴 표정이 순한 강아지처럼 바뀌었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한 나인데 생리가 임박하도록 짜증이 한 번 안 났다. 시도 때도 없이 쿵쿵 내려앉던 심장도 잠잠하다. 그제야 신랑에게 항우울제를 먹고 있노라고 말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 신랑에게 원망 섞인 말을 퍼부었다."내가 힘들어 죽겠다고 했잖아. 미칠 것 같다고. 내가 힘들다고 할 때 당신 뭐라고 했어. 남들 다 힘들어도 참고 있는 거라며 나만 철없는 아줌마 취급했잖아! 왜? 내가 이 것도 못 버티고 약 먹는다니까 나약해 보여?" 입 한 번 못 떼고 가시 돋친 말을  듣기만 하던 남편은  약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인터넷으로 약 정보를 검색했다. 어느 약사의 블로그에 원하는 정보가 있던 모양이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으며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게시물을 확인하고 나자 용량은 확인하고 먹었느냐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말없이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완전히 뒤집어진 나를 남편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거다. 평소에도 퇴근 이후 잠깐, 주말에만 아이를 대하는 남편은 늘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목말라했다.  그러니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스트레스받는 나를 이해할 턱이 없었다. 내가 안전한 공간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은 전쟁터에 다녀온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기사는 성안에 갇힌 여자도 온종일 그녀만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남편이 나를 알아주고 이해했더라면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을까? 먹지 않고 버텨냈을 수도 있겠지만  약 덕분에 나의 하루는 한결 편안해졌다. 죄짓는 기분으로 아이들을 혼내고 또 후회하는 일들이 줄었고  잠도 편히 잔다. 물론  이 마법의 약 효과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까지 약의 효과에 기댈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누구는 상황이 좋아지면 우울감이 쉽게 가신다고 했고, 누구는 우울증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임시방편으로 약을  먹지만 몸과 마음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식으로 병원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저녁때가 되면 슬슬 시동이 걸린다. 아이들은 피로가 밀려오는지 떼를 부리며  숙제를 하니 마니 하며 실랑이를 벌인다. 두어 번 알아듣게 타이르고도 말을 듣지 않아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나를 보며 남편이 외친다.


"여보! 당신 지금 약 먹을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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