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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사랑 주간

by 주원

저녁 먹고 설거지하는데 애들이 좀 요란하다 싶더니 둘째 방에서 막내가 빽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 씩씩거리는 폼을 보니 이건 최소 30분짜리다. 서서 들으면 피곤하겠다 싶어 얼른 식탁 의자에 앉았다.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막내는 언니가 자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래서 제 기분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읊어댔다. 말이 얼마나 빠른지 듣는 나로서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는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원래는 집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아이인데 오늘은 왠지 소곤소곤 얘기해서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마 전에 싸우고 난 뒤에 언니를 고자질하다 혼난 것을 염두에 둔 모양이었다.


듣다 보면 다 똑같은 말인데 어쩜 매번 다르게 말하는 말하는지 재주가 용하기도 하다. 말싸움만 하기에는 아까운 언변에 나는 홀리다 못해 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뭘까?' 고민하고 있는데 둘째가 방에서 소리쳤다.


"야! 000 너 지금 하는 말 나한테 다 들려."


그러자 막내가 지지 않고 말했다.


"언니 들으라고 한 얘기거든!"


세상에! 한방 먹었다. 소곤소곤 말하길래 내게 몰래 하는 얘기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언니한테 나쁜 말은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 싸움이 더 길어질게 뻔하다. 길어진 싸움의 원인이 제 탓이 될 가능성도 높다. 차라리 목소리를 낮춰 엄마한테 하소연하는 척 언니에게 하고픈 얘기를 다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조조도 울고 갈 지략가가 아닐 수 없었다. 언니들은 그렇다 쳐도 엄마인 나보다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막내에게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분명 둘 다 잘못한 게 있는데 둘 다 억울하다고만 하는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싸울 수는 있지만 서로 예의는 지켜야 한다. 먼저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를 해라. 지금 닥친 상황으로 싸워야지 지난 잘못을 들추면 안 된다 등등 몇 마디 말들을 해주고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마지못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둘째를 보며 이따 따로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뒤돌아섰는데 막내가 따라와 귓속말을 했다.


"엄마. 언니들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헉. 이게 무슨 말이야?' 심장이 내려앉았다.

"왜?"

"그래서 제 동생으로 태어나면 좋겠어요. 언니들이 둘이만 놀고 저를 따돌려요. 제가 작다고 무시하고 저 이상하다고 욕해요. 저도 쌍둥이였으면 좋겠어요. 왜 저는 쌍둥이로 안 낳아줬어요? "


무시무시한 말 안에 담긴 의도가 생각했던 것만큼 파국은 아니었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꽉 들어찬 막내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말을 입에 담은 거였다. 이해는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 아이들 셋을 다 호출했다.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잘 싸우게 해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일 터였다.


둘째와 막내의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훈육의 서두를 터야 했다.


"너희들 이렇게 싸우다니 엄마는 매우 실망스럽다." 하고 말하는데 느닷없이 첫째가 울었다. '아니. 너는 또 왜 우니?' 억울하다는 거였다. 그동안 쌓인 게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 저는 귀찮아도 막내가 놀자고 하면 조금 기다리라고 한 다음 놀아줬어요. 한 번 놀아주고 이제 너 혼자 놀라고 하면 막내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저에게 원망만 해요. 둘째한테는 그런 말 하지도 않고 저한테만 그래요. 저를 만만하게 보는 게 틀림없어요."


첫째 말을 듣고 막내에게 사실이냐 물았더니 막내가 답했다.


"둘째 언니는 까칠해서 제가 뭘 물어봐도 쌀쌀맞게 대답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첫째 언니한테 놀아달라고 하는데 첫째 언니가 성의 없이 조금 놀아주고는 이제 그만 놀자고 해요. 그래서 제가 이럴 거면 왜 놀아주냐고 했어요."


첫째 말이 맞았다. 잘해주고도 욕을 먹었으니 억울할 만했다. 기가 센 막내도 사춘기에 진입한 까칠한 둘째에게는 말도 못 붙이고 첫째만 들들 볶고 있던 모양이었다. 첫째의 억울함도 막내의 서운함도 다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 마음을 인정해 주고 달래주려고 부부가 함께 나서 대화를 시도했다. 의도는 좋았으나 아이들은 서로 상대가 잘못했던 것만 비난하려 들었고 대화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듣다 듣다 모두 그만두라고 했다. 이런 식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 서로 잘못한 게 있으니 오늘 다 인정하고 잊기로 하자. 오늘부터 남 탓을 하거나 미운 말은 하지 말고 이번 주 매일 저녁 오늘 하루 서로를 위해 뭘 잘했는지 발표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아이들이 눈을 껌벅껌벅했다. 이런 것으로 얻게 될 이득이 쉽게 눈에 보일리 없었다. 그 순간 아빠가 말했다.


"서로를 잘 관찰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선물해 주자. 비용은 아빠가 쏜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갑자기 셋이 모여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뭘 선물하면 좋을지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매사랑 주간이 시작되었고, 자매의 우애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다0소가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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