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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뭔가가 있다

by 주원

우리 집에 뭔가가 있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 애들이 다 어마어마한 집순이다. 특히 쌍둥이는 집순이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일단 친구가 별로 없다. 바깥에서 하는 활동적인 놀이를 싫어한다. 컴퓨터 게임이나 유튜브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 놀만한 취미도 있다. 뜨개질을 두세 시간 할 때도 있고 만화책을 잡으면 한두 시간은 우습다. 요즘에는 또 큐브에 빠져있다.


막내는 언니들과 달리 바깥 활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얘도 집순이에 가깝다. 학교가 끝나고 방과 후 수업을 갈 때 30분만 시간이 남아도 집에 온다. 왔다 갔다 하려면 정작 집에서 쉬는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되는 데도 꼭 집에 와서 쉬다 간다. 만들기나 요리 같은 취미가 있기는 하지만 중간에 얘는 꼭 유튜브나 게임을 시켜달라고 졸라서 불만이다. 제발 나가서 좀 놀았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더하다. 어째 약속 있다고 나갈 때보다 약속 취소됐다고 들어올 때 더 신나 보인다. '왜지?'


나도 집순이에 가깝기 때문에 다른 가족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나는 집에 혼자 있고 싶은 집순이기에 문제가 된다. 가뜩이나 식구도 많은데 다들 집에 모이니 이 방 저 방 거실이고 주방이고 사람이 널렸다. 애들은 몸집이라도 작지 (시도때도 없이 누워있는)남편은 존재감이 너무 크다. 밥은 또 왜 이렇게 잘 먹는지. 삼시세끼 간식까지 하나도 거르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도 밥은 집에 가서 먹으면 안 되냐고들 한다. (맛집이 널렸는데 집에 가자고?)


아이들 어렸을 때 친구네 집 놀러 가도 금방 집에 가자고 하는 아이들이라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집에 꿀 발라놨냐고들 했었다. 조금 더 크면 밖에 나가 노는 것을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는 집순이 첫째 때문에 웃기는 일이 있었다.


주말에 첫째가 와서 선생님과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오해?'


"오해라니? 무슨 말이야."

"제가 쉬는 시간에 숙제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숙제가 그렇게 많냐고 물으셨어요."

"그런데?"

"그래서 제가 그렇다고 했더니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힘들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엄마한테 학습량 줄여달라고 말씀드려 줄까? 하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더니 선생님 표정이 어두워지셨어요."

"왜 어두워지셨지?"

"제가 영문을 몰라 쳐다보니 '선생님이 말씀드리면 엄마가 너를 더 힘들게 하실까?' 하고 물으셨어요."

"......."


'하...'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우리 첫째는 나중에 훌륭한 직장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아이는 칼퇴는 기본이고 업무를 절대 집에 들고 오지 않는 습관이 있다. 학교 쉬는 시간에 모든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끝낸다. 이유가 뭐냐 하면 바로 집에 와서 개운한 기분으로 놀기 위해서다. 이 습관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친구들은 모두 우리 첫째가 대단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줄 알고 학원도 많이 다니는 줄 안다. 학교에서 코 후비다 코피가 났을 때 친구들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집에 가서 엄마들한테 그렇게 말했는지 가끔 지나가던 엄마들이.


"00 이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서요?" 하는 말도 들어봤다.


선생님도 오해를 하신 모양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애라는 오해까지는 뭐 그렇다 칠 수 있는데 아이 표정을 보니 분명 선생님은 나를 애 잡는 극성엄마로 보신 게 틀림없었다.


뭔가 억울했다. 선생님께 메시지를 썼다. 속마음은 '얘가 수학 학원 꼴랑 하나 다니면서 학교에서 그렇게 유난을 떨었다니 유감입니다. 그게 다 집에 와서 신나게 놀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진작부터 학교에서 그렇게 숙제만 하면 친구들이 밥맛 없어한다고 말은 해주었습니다만 말을 듣지 않네요.'라고 쓰고 싶었지만 나는 교양 있는 학부모가 아니던가.


'아이의 바른 성장을 위해 관심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이의 학원숙제는 주 2회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양입니다. 다만 그 숙제를 학교에서 다하고 오는 바람에 생긴 오해 같습니다. 집에서는 책 읽고, 유튜브보고, 뜨개질하고 건전하게 지내고 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는 내용이었다.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르며 아이에게 웃으면서 외쳤다.


"너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서 숙제만 하면 친구들이 오해한다고 했지. 집에서 하라니까!"

"집에서는 놀아야 된단 말이에요."


도대체 우리 집에 뭐가 있길래 다들 이렇게 집에서 놀려고 하는 걸까?


feet-5558288_1280.jpg 사진출처: 모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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