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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었다

자매사랑 주간

by 주원

토요일 남편과 라운드를 다녀왔다. 골프 라운드를 가면서 쌍둥이에게 막내를 챙기라고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자매란 잘 놀 때는 친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처첩 사이만도 못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오래 데리고 놀라는 부탁도 아니었다. 원래 자매에게 빙수를 사주기로 했는데 둥이의 친구 하나가 끼었다. 그래서 넷이 같이 가서 먹고만 오라고 했다. 저녁은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주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잘 준비를 마치면 우리 부부가 집에 도착할 시간일 터였다.


남편과 출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아파트 복도에 있는 창문으로 아이들이 보였다. '마침 오는 군.' 하는데 막내가 없다. 첫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막내는 어딨냐 물으니 집에 먼저 갔다는 거다.


"막내 아직 집에 안 왔는데." 말하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막내를 찾으러 가야 하나 생각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막내가 짠 하고 튀어나왔다. 왜 혼자 왔냐고 물으니 '그냥요.'라고 대답하는 막내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친구만 챙기고 기어코 막내 혼자 보낸 아이들이 조금 괘씸했다.


다음 날은 일어나자마자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주말마다 가능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전국 구석구석을 보여주자는 게 우리 부부의 목표였다.


여행지는 보령이었다. 죽도 상화원에서 산책을 하고 석탄박물관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하자 굵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바다에 들어가려고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터라 비에 젖는 것이 싫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바다에서 노는 것이 오히려 낭만 있다 느껴졌다. 바닷가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대천항에서 회도 잔뜩 떠서 집으로 돌아왔다.


실컷 놀아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 상을 차리자마자 달려들었다. 다디단 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먹성이 좋은 첫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직 접시가 그득한 막내가 말했다.


"언니야. 내 거 더 먹을래?"


그러자 눈도 안 마주치고 첫째가 쌀쌀맞게 말했다.


"아니. 필요 없어."


막내는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남편과 나는 당황스러웠고 화도 났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동생이 배려해 주는데 그렇게 사람 눈도 안 쳐다보고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예쁘게 다시 말해줘."


첫째는 마지못해 아주 형식적으로 막내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더 화가 난 남편이 말을 보탰다.


"아까도 막내를 챙기지 않고 너희끼리 온 행동이 엄마 아빠는 매우 불편했어. 같이 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빙수 먹고 집에 오는 그 시간까지 동생을 돌보지 않고 따로 행동해야 했니?"


"막내가 먼저 집에 간다고 했어요. 매번 다니던 길이고 저희가 일부러 보낸 것도 아닌데 그게 우리 잘못인가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저 그 잠깐의 시간도 못 참고 떨어지고야 마는 자매 사이가 영 마뜩잖은 것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표정을 펴지 못했고 첫째와 둘째는 고개를 떨구었다. 식탁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밥상에서 혼을 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버려 속상하고 당황스러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상황을 지켜보던 막내가 갑자기 일어나 식탁에 있던 저녁 먹은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기 그릇만 싱크대에 가져다 두는데 언니들 그릇, 남편과 내 그릇까지 치웠다. 자기 때문에 언니들이 혼난다고 생각하니 가시방석인 모양이었다. 눈치를 보며 시키지도 않은 정리를 하는 막내에게 꽂히는 첫째와 둘째의 시선은 어찌나 살벌한지 내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지금 막내가 하는 행동이 엄마아빠한테 혼자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일처럼 보이니?"

"네. 그렇게 보여요."

"엄마가 보기에는 아니야. 막내는 지금 자기 때문에 언니들이 더 혼나는 것 같아서 불편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이렇게 서로를 미워해서 좋은 의도까지 오해하는 마음이 너무 안타깝다."


남편은 나보다 더 속이 상한 모양이었다.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 없으면 막내를 돌봐 줄 사람은 너희들이다. 세상에 형제지간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등등의 말이었다. 아직 먼 일이겠지만 아이들끼리만 남겨진다는 잠깐의 상상만으로 남편과 내 감정은 고양되었다. 그때 갑자기 막내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막내의 눈물에 덩달아 더 슬퍼진 우리 부부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사람 마음이 닫히면 아무도, 아무것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들에게만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재웠다. 남편은 자기가 했던 말이 너무 슬펐던 모양이라고 막내가 마음이 여려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본인인 한 연설에 스스로 조금 감동한 것 같아 보였다.


다음 날, 학원을 데려다주며 막내와 둘이 대화할 시간이 났다. 막내에게 물었다.


"막내야. 너 어제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어? 엄마 아빠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언니들이 소중하게 느껴졌어?"


"아니 엄마 그게 아니고요. 억울해서 그랬어요. 제가 괜찮다는데 왜 아빠는 언니들을 혼내서 저 불편하게 만든 거예요? 그 정도 거리는 저 혼자 다닐 수 있는데 왜 굳이 일을 크게 만드셨대요?"


부부가 단단히 오해를 했다.


네. 여러분 그랬답니다. 억울해서 울었답니다. 자매사랑 주간에 자매사랑은 없더군요.


사진출처: 커버사진 픽사베이, 마지막 사진은 대천해수욕장에서 아빠와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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