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셋 키우는데 셋다 척추측만증이다. 대학병원에서 측정 결과 둘은 20도가 넘고 하나는 17도다. 엑스레이를 처음 본 날, 남편과 나는 밥도 잠도 잊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데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한창 성장 중인 아이들이라 더 많이 휠 우려가 커서 둘은 척추 보조기를 착용하게 되었다. 하나는 3개월 간격 추적관찰 중인데 이 아이도 곧 보조기 착용을 해야 할 것 같다. 측만증에 효과가 있는 운동은 수영이라고 교수님이 추천해 주셨다. 측만증 진단 이전 1년간 수영을 배웠던 쌍둥이는 수영을 다시 하기 싫어했다. 한참 2차 성징이 나타나고 있는 아이들이라 더 강요하지 못하고 대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막내는 마침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수영이나 필라테스를 한다고 척추가 펴지는 것은 아니고 더 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보조적 운동이라고 봐야 한다.
얼마 전 필라테스 선생님이 아이들 발 아치가 무너졌으니 교정 깔창을 맞춰주는 게 좋겠다 하셨다. 운동으로 위를 잡아주어도 발에서 무너지면 소용없다는 거였다. 척추운동센터라는 곳에 갔다. 이런저런 기계들로 체형분석을 해주는데 결과로 아이들 몸 상태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엑스레이 상으로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머리, 어깨, 골반, 무릎, 발목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을 보자 또 가슴이 철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이들 몸이 확연히 뒤틀려 있었다. 맞춤 깔창을 깔면 골반 틀어짐은 훨씬 좋아진다고 했다. 성장 중인 아이들이니 발이 크면 다시 맞춰줘야 한다고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나는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바로 5년 전에 이 센터에서 첫째가 평발 때문에 깔창을 맞춰서 신었던 적이 있다. 한참을 신었지만 효과는 잘 모르겠고 깔창을 했던 아이도 안 했던 아이도 다 측만증이 생겼다. 바로 결정을 못하고 있는데 상담해 주시는 분이 막내는 교정운동도 시급하다고 하셨다. 제일 어린데도 상태가 제일 안 좋다고 하셨다.
아이들 체형분석 사진을 보고 고민에 빠졌는데 아이들이 제 몸 비뚤어진 사진을 보고 웃었다. 서로 장난을 치다가 웃음이 터진 모양이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마침 막내 학원 갈 시간이라 생각해 보고 연락드린다 하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마자 막내는 학원에 안 가면 안 되냐며 버블티를 사달라고 했다. 쌍둥이도 맞장구를 치며 같이 사달라고 졸랐다. 순간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지금 너희들 몸이 아파서 왔는데 몸에 안 좋은 음료를 먹고 싶다고 하는 거야? 철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엄마 이렇게 걱정하는 거 보이지도 않아? 너희 몸이야. 너희 몸이 그렇게 휘고 비뚤어진 사진을 보고 웃음이 나와? 엄마 아빠는 너희 건강을 위해 애쓰는데 너희는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했니?"하고 퍼붓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 왔다.
버블티는커녕 혼만 난 아이들은 집에 와서도 얌전했다. 아이들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저녁을 차리는데 막내 수영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전에 수영시간 변경요청 드린 것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은 선생님이 안되시고 대신 다른 남자 코치님께는 가능하다고 하셨다. 생각해 본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막내에게 다른 선생님께 수업 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원래 선생님 아니면 싫다고 눈물을 쥐어짰다. 새로운 선생님께 한 달만 해보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도 아이는 고개만 저었다.
또 폭발해 버렸다.
"엄마가 어떻게 더 해줘야 하니!" 소리를 빽 지르고 방에 들어와 누웠다.
제 몸 건강해지라고 그렇게 애를 써서 시간을 넣었다 빼면서 운동을 시키면 무얼 하나. 정작 애들은 싫다고만 하는데. 아이들 척추 사진이 떠오르며 처음에는 화가 났고 그다음에는 불안했고 나중에는 죄책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직은 통증이 없지만 측만이 더 진행되면 통증도 생길 거고 수술도 고려해야 했다. 마음이 아파 눈물이 솟았다.
내 불안감에 아이들에게 화를 냈지만 사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 초등학생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운동은 귀찮고 달콤한 간식은 당길 나이였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 잘못이라기보다는 내가 너무 감정이 앞서서 그런 거니 당신은 모른 척하라고 했다.
알겠다고 넙죽 대답하더니 막상 집에 들어와 눈물을 비줄비줄 흘리는 나를 보니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바로 안방 문을 박차고 나가서 아이들을 혼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엄마 속상한데 웃고 장난만 치면 되냐. 운동을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성의 없이 해도 되냐. 선생님이 바뀐다고 그렇게 울 거면 운동을 뭐 하러 하냐. 엄마 아빠가 이렇게 애를 쓰는 걸 알고는 있냐'는 내용이었다.
모른 척하라고 했건만 저 사람은 꼭 2절 3절 멈추지를 못하더라. 나 위해서 그러는 거라 참기는 했는데 듣다 듣다 나도 못 들을 지경이었다. 이어서 애들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내가 혼내는 건 괜찮은데 남편이 혼내는 꼴을 보면 내 속이 그렇게 뒤집어졌다. 뛰어나가 남편을 혼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그 말이 왜 나오냐고!' 외치고 싶었다. 남편 위신이냐? 내 새끼 마음이냐?를 갈등하며 안방 문에 귀를 댄 체 주먹만 꽉 쥐었다.
빨리 끝내고 얼른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할 말이 많기도 했다. '이 남자가 진짜!'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이윽고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남편이 의기양양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편이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여보. 나 방금 진짜 멋있었지?"
진짜 멋지게 때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