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pro) 주부다. 이왕 주부 하는 거 제대로 해보겠다고 2년 전쯤 나 스스로 선언했다. 셋째를 임신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한 주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살림도 젬병인데 육아는 또 얼마나 막막한지. 아무리 애를 써도 애들은 명창이라도 되려는지 신명 나게 울었다. 가뜩이나 인정욕구 강한 나는 쪼그라들다 못해 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돈이라도 벌어보자. 전공을 살려 근처 도서관에 독서논술교육 강의도 나가보았다. 수업하는 것이 재미있고 책에 흥미를 느끼는 수강생들을 보며 보람도 느꼈다. 처음 몇 주는 외할머니와 지내며 잘 참아주던 아이들이 보채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갈 시간이 되면 휴대폰이 불이 났다. 마음이 늘 불안했다. 남의 자식 돌보자고 내 자식 맡기는 일이 편치 않았다. 내 일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잠시 한쪽에 접어두기로 했다.
아무 데도 마음을 못 붙이고 남의 인생처럼 내 삶을 살았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내가 뭐라도 될 줄 알고 물심양면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 삶이 불만족스러우니 아이들과 남편에게 충실하지도 못했다. 아기를 안아 재우면서도 창문 밖만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텐가? 잡히지도 않는 꿈을 좇느라 아이들과 남편을 족쇄 취급하기도 싫고 무기력하게 쫓기듯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하던 어느 날 머리에 불이 켜졌다. 프로페셔널한 주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이나 남편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성취감을 느껴보기로 말이다.
제일 신경을 썼던 것은 육아였다. 주부가 해야 할 일은 구십구만 가지 정도 되지만 그중 오늘 안 하면 가장 큰 일어나는 일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고작 먹고 싸는 것이 전부일 줄 알았던 아이들의 세계는 무한했다. 같은 고구마도 어제는 껍질을 깠다고 오늘은 껍질은 안 깠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귀빈처럼 응대해 드리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말귀 알아듣는 날 두고 보자.
두 번째는 요리였다. 아이들은 아직 새 모이만큼 먹는데 사 먹으려니 돈이 많이 들었다. 조그만 플라스틱 용기를 쌓아서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조금씩 장을 봐서 아이들 먹을 만큼만 요리를 만들었다. 손은 많이 갔지만 소꿉놀이처럼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조금 큰 다음부터는 요리를 하며 역할 놀이도 했다. 어묵탕을 줄 때는 일본 식당에 온 것처럼 일본어를 스파게티를 먹을 때는 이탈리아어를 엉터리로 하며 요리사인양 굴었다. 안 먹던 채소도 일본 초밥 장인처럼 엄숙히 주먹밥 위에 얹어주면 아이들은 넙죽 받아먹었다.
청소는... 다음 생에 잘해보려고 한다. 원래 전문가라는 것이 한 영역에 국한된 것이다.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은 프로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마지막으로 놓치지 않은 것이 자기계발이었다. 주로 집에 있다 보니 생활이 단순해지고 대화의 수준이 오랫동안 뽀로로에 머물렀다. 큰애들이 3년 봤으니 끝날 줄 알았는데 막내도 3년을 더 봤다. 뽀로로 대사는 줄줄 외우면서 정작 내가 필요한 단어는 생각이 안 났다. 도서관 문을 더 자주 열고 닫았다. 마침 막내 어린이집 보내면서 시작했던 독서모임 회장님이 이사를 가시며 회장 자리를 내게 물려주었다. 읽고 감상 정도를 얘기하는 것과 모임을 주재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무슨 책을 함께 읽을지 어떤 대화를 할지 생각만 해도 설레고 신이 났다.
운동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애셋을 키우다 보니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막내 어린이집 보내고 난 후 지인 추천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는 고통스러웠다. 매번 오늘 선생님이 일이 생겨서 수업이 취소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만 쳐다봤다. 공연히 애들 귀에 체온계를 꽂은 날도 있었다. 10분 걷기도 싫어하는 사람이 쉽게 바뀔 리 없었다. 몇 년을 지지부진하게 운동하다 프로 주부를 선언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40년 넘게 살아보니 하기 싫은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더라. 그럼 나는 운동이다! 걷기, 필라테스, 헬스, 골프, 탁구, 등산 등 닥치는 대로 운동했다. 처음에는 1시간 걷고 나서 1시간 자고 50분 필라테스하고 3시간 누워있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운동을 3개씩 해도 거뜬하다. 이상하게 아이들이 잘못해도 전처럼 화가 나지 않았다. 남편도 혼나는 날이 줄었다. 친절은 체력에서 나오는 거였다.
프로 주부를 선언하고 가족의 삶이 전반적으로 행복해졌다. 우리 가정 안에 '나'라는 사람이 끼치는 영향이 이리도 큰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인정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가끔씩 지치기도 하지만 프로답게 살겠다는 나의 마음이 흐릿해지지 않도록 SNS에 나의 일상과 성취를 기록한다.
나는 나에게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