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일요일에 근교로 나들이를 다녀온 터라 몸이 몹시 피곤했다. 이럴 때일수록 풀어지면 안 된다. 얼른 세안을 하고 양치도 했다. 가볍게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거울을 보니 입술이 건조하다. 벌써 한 달째 안방 화장실에 방치되고 있는 막내 립밤을 (허락 없이) 입술에 발랐다. 조금 뻑뻑한 제형이라 바르기 불편했지만 안 바르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월요일은 아이들이 일어나기 힘들어하니 가능하면 입맛 당기는 아침을 차려준다. 오늘은 핫케이크다. 여러 브랜드 핫케이크 가루를 사서 먹어보고 그중 많이 달지 않고 퐁신퐁신한 제품으로 정착했다. 적당히 부푼 핫케이크를 담아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려주고 위에 버터도 한 조각 얹는다. 향긋한 냄새에 아이들이 홀리듯 식탁에 앉는다. 맛있게 먹으라 하고 바로 건조기에서 지난밤 돌린 빨래를 꺼냈다. 제일 싫어하는 집안일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일이므로 으쌰으쌰 주문을 외워본다. 그새 아침을 해치운 아이들이 소란스레 가방 싸는 소리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개킨 옷을 정리하고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은 독서모임 하는 날이다. 처음 읽어보는 작가의 책인데 문장이 제법 인상적이라 다른 회원들과 의견 나눌 생각에 설레었다.
출석률도 좋고 모두 완독을 한 상태라 대화가 알찼다. 가끔은 전혀 다른 감상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다들 비슷한 감상과 의문을 꺼낸 것이 신기했다. 내가 주재하는 월 2회 독서 모임 하나와 회원으로 참여하는 월 1회 모임 이렇게 한 달에 세 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매달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기다린 만큼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가볍게 점심까지 먹고 헤어졌다.
집에 들어와 저녁때 먹을 갈치를 손질했다. 갈치 비늘은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비린내도 난다. 한 손으로 갈치를 잡고 칼 등으로 살살 긁으면 은빛 비늘이 스르르 벗겨진다. 보얗게 벗겨진 갈치를 다시 씻어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후 냉장고에 넣었다. 무나 햇감자를 넣어 자박하게 조리면 정말 맛있을 텐데 아이들은 구이를 더 좋아한다. 굵은 갈치가 아니라 부침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구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손을 닦고 시계를 보니 막내 학원 데려다줄 시간이었다. 자두를 씻어 과도로 잘랐다. 새콤달콤한 과일을 좋아하는 막내는 한조각도 남기지 않을 거다.
1시 50분 학원 앞에 막내를 내려주자마자 쌍둥이 수학학원으로 내달렸다. 주말에 둥이가 과제를 하면 월요일에 내가 채점을 받아다 준다. 작년부터 다니게 된 수학학원 학습량이 많아서 이렇게 채점을 받아다 주면 하원 시간을 조금 당길 수 있다. 다행히 채점은 바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다시 막내 데리러 갈 시간이다. 2시 50분이 되자 막내가 학원에서 나온다. 탱탱볼처럼 튀는 아이를 용케 태워 집으로 왔다.
오후 간식으로 복숭아를 씻어 잘라주었다. 요즘 천중도가 맛이 제대로 올라 아이들이 먹을 때마다 탄성을 지른다. 오물거리는 입만 봐도 웃음이 피어난다. 여름에는 과일이 많아서 간식 주기가 좋다. 아이들 간식 먹는 동안 앉아서 조금 쉬어본다. 노곤노곤 잠이 올 것만 같은데 빨래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얼른 세탁기를 돌리고 손빨래까지 하고 보니 시간이 벌써 4시 30분이다.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쌍둥이 척추측만증 때문에 재활 필라테스를 나도 함께 받고 있다.
운동 끝나고 6시. 레깅스만 후딱 벗고 운동복 상의는 그냥 입은 채로 저녁 준비를 한다. 밥순이들 배꼽시계가 요란하게도 울렸다. 필라테스 끝나자마자 집에 와서 준비하려니 피곤하긴 하지만 아이들 꼬르륵 소리가 귀에 박힌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갈치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저녁을 다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잠깐 쉬었다가 저녁 공부를 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게 나의 교육관이다. 공부하는 시간은 매일 7시~8시이고 아이들은 각자 정해진 공부를 한다. 오늘은 막내도 떼 한번 안 부리고 제 할 일을 마쳤다.
8시 30분이 되면 아이들이 씻기 시작한다. 9시가 되면 공식적으로 나는 육아퇴근이다. (민원이 있어도 안방 문턱을 못 넘게 한다.) 오늘은 9시 10분쯤 아이들이 잘 준비를 마쳤다.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하다. 아이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했다. 이제 씻고 쉬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모든 일을 빈틈없이 해낸 완벽한 날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화장을 지웠다. 모처럼 얼굴에 팩이라도 해볼까? 선반 위로 손을 뻗다 그만 치약과 그 옆에 있던 립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또르르 굴러온 립밤을 집어 올리는데 노안 때문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글씨가 눈에 띄었다.
"글루 스틱"
어쩐지 짝짝 붙는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