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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이들

by 주원


아이들 수학학원에서 단원평가를 보는 날이었다. 이 학원은 공부를 열심히 시키기로 유명하다. 단원평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점수를 누적해 유급이나 강급을 시킬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단원평가 주간이 다가오면 교재를 학교에 들고 가서 쉬는 시간에 공부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결과와 상관없이 단원평가를 끝내고 나면 우리는 늘 맛있는 저녁을 사 먹고는 했다.


아이들 시험 끝날 시간이 되어 막내랑 학원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시 10분에 하원 문자가 왔는데 17분이 되어도 아이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늦다 싶어 막내에게 차에 있으라고 하고 5층에 있는 학원으로 올라갔다. 데스크 선생님께 하원문자가 왔는데 아이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말씀드리니 아이들을 불러주시겠다고 하셨다. 10분 같은 1분이 흘렀을까? 선생님이 자습하는 교실에 아이들이 없다고 하셨다. 하원 문자 받은 것을 보니 아이들이 아마 계단으로 내려가서 길이 엇갈린 것 같다고 하셨다. 평소에 계단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의아했지만 알겠다고 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별 걱정을 한 건 아니었는데 차 문을 여는 내 손길이 평소와 달랐던지 막내의 눈이 커졌다.


"엄마. 언니는요?"

"언니 안 왔어? 선생님이 내려갔다고 하시던데. 이상하다."

"언니 무슨 일 있대요?"

"아니야. 언니들 1층에 있나 가보고 올게. 차에서 좀 기다리고 있어."

"엄마.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무서워요."

"언니 내려왔는데 차에 너도 없으면 길이 또 엇갈릴 수도 있잖아. 차에 있자."

"네. 알겠어요."


조금 긴장한듯한 아이를 달래고 아이들을 찾으러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상가 1층은 고요했다. 오늘따라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상가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보았지만 아이들의 흔적은 없었다. 선생님께 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지하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선생님도 약간 당황하시며 혹시 아이들이 돌아오면 어머니께 바로 전화드리라고 전달하겠다고 하셨다.


혹시나 엘리베이터에서 층수를 잘못 눌렀나 싶어 지하 2층으로 내달렸다. 아이들은 없었다. 지하 1층으로 다시 올라가 차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엄마 장난이었어요!'하고 뒷좌석에 숨어있기를 바랐다.


막내는 아까보다 더 놀란 기색이었다. 나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는 못했다.


"아직도 언니 안 왔어? 아무래도 엄마가 다시 올라가 봐야겠어."

"엄마.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차에 아이를 혼자 두고 가는 게 걱정되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뛰어다닐 자신이 없었다.


"엄마 진짜 금방 올게."


전속력으로 달려 1층으로 올라가 상가 정문으로 뛰어나갔다. 깊은 곳까지 서늘해진 내 온몸이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공기에 부딪혔다. 숨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이상했다. 막내가 아침을 먹다 접시를 깼다. 딱 세 개뿐이라 아이들 간단한 아침이나 간식을 줄 때 조르륵 내어주던 접시였다. 예쁘기도 하고 같이 가서 고른 거라 아이들과 나의 애정이 담겨있는 접시였다.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더라니!'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것도 떠올랐다.


학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 것도 찝찝했다. 보통은 아이들이 전화(학원 공용 전화)를 걸어 내가 주차장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하원 문자를 찍고 내려온다. 오늘은 내가 진동으로 해둔 전화기를 가방에 둔 바람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이 몰려나와서 그런지 주차장이 매우 분주했고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아주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냐고 물었다.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전화 안 왔다고 답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상황설명을 하자 남편은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 학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내게는 바로 관리실에 가서 CCTV부터 확인하라고 했다. 그다음에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다. 바로 혼자 있는 막내에게 뛰어갔다. 언니가 없어져서 찾으러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무 말 못 하고 따라오는 막내를 다독이려는데 학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첫째가 학원에 있어요. 그런데 둘째는 아까 내려갔다고 하네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학원에서 첫째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선생님은 아이가 자습실 뒤편 기둥 옆에 앉아 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고 죄송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신 말씀이 첫째가 말하길 둘째는 아까 주차장에 내려갔다고 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아이가 학원을 떠나서 나를 만나러 내려간 지 20분이 넘었다는 뜻이다. 한 번도 나에게 말없이 학원 건물 밖을 나선 적이 없는 아이다. 허락 없이 장소를 옮기는 일도 없었다. 집과 학원은 차로 30분은 가야 하는 거리라 혼자 집에 갔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대체 왜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거니?'


선생님은 곧바로 관리실에 전화하셨다. 다행히 관리실 소장님이 전화를 받으셔 지하주차장에 CCTV가 있다고 확인해 주셨다. 최대한 빨리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첫째와 막내 손을 꼭 붙들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손이었다.


그 순간 자습실에서 둘째가 비죽 나왔다.


모두가 깜짝 놀란 순간이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시험이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엄마가 받지 않았다. 엄마가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아 하원 문자를 찍었다. 순간 다하지 못한 숙제가 생각나 첫째가 자습실에 다시 들어가며 둘째에게 엄마 기다리시니 너 먼저 내려가라 했다. 둘째는 혼자 내려가기 싫어 저도 뒤 이어 자습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기둥 옆에 있는 첫째를 두 번이나 못 보고 지나치셨다. (엄마는 학원 건물 안과 밖을 뒤지며 지옥을 맛보았다.) 선생님이 세 번째 시도에 첫째를 발견하셨다. 다른 선생님들과 내가 학원 데스크 앞에서 둘째의 행방을 찾고 있을 때, 공부를 마친 둘째는 태연히 자습실 밖으로 나왔다.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께 찾았으면 되었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눈앞에 아이 셋이 다 있는데도 심장은 여전히 쿵쾅대고 내 손은 아이들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첫째가 나를 돌아보며 해맑게 말했다.


"엄마. 저 단원평가 잘 본 것 같아요."


놀란 엄마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였을까? 한 번도 성적을 운운한 적이 없는데도 아이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목에 뭐가 꽉 찬 듯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성적이 무슨 상관이니. 네가 엄마 앞에 있는데."


오늘 나의 천국과 지옥 어디에도 성적표는 없었다.


mother-5978378_1280.jpg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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