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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은 사랑이었다

어느 예술가의 속마음

by 주원

남편은 사진을 잘 찍어준다. 아마 내가 sns를 시작한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한 오 년 전쯤 아이들 크는 게 아까워 일상기록 겸 글쓰기 연습할 겸 사진과 짧은 동영상 기반의 sns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나 나의 취미활동을 사진 한 장에 담아 놓으면 내 일상도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가끔 근사한 식당에 가거나 예쁜 카페에 가서 먹기 전에 사진을 꼭 찍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아직 미취학이었던 막내의 손은 말릴 새도 없이 프레임에 담겼다. 아쉽기는 했지만 또 그런대로 사랑스러운 스토리가 되었다.


"또 찍어?"

남편의 단골 대사였다. 그럴 만도 했다. 외출만 하면 사진을 찍어대니 그럴 때마다 남편은 멈추고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바뀌었다. 어쩌다 식당에 가거나 카페에 가면 나한테 물었다.


"안 찍어?"

새로울 곳 없는 장소고 먹었던 메뉴고 해서 딱히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남편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내 포토타임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마자 남편은.


"얘들아. 잠깐만 기다려. 엄마 사진 찍어야지." 하는 거다.


그 마음이 고마워 올리지도 않을 사진을 한 두 장 찍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예쁜 장소만 나타나면 사진을 찍었다. 구도를 잡고 나를 세워두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셔터를 눌렀다. 아이들도 남편의 셔터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일상 기록에 의미를 둔 내 사진과 남편의 사진은 결이 달랐다. 남편은 뭔가 하기로 하면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배경과 인물의 조화, 빛의 노출,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율, 인물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남편은 체크했다. 나랑 아직 사방팔방 뛰는 아이 셋의 표정이 다 좋을 수는 없었기에 남편은 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이들은 곧 싫증을 내고 불평을 해댔다. 참고 견디는 나는 대부분 완벽한 결과물을 건네받았다.


나의 sns는 점점 진화되었다. 노동복을 입고 일하는 일상과 남편이 찍어주는 사진 속 주말 일상은 다른 세계였다. sns의 부작용 보여주기식 삶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내 삶 중 예쁘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담아내는 사진도, 사진을 담아주는 sns도 내게는 순기능이 더 컸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난 주말에 남편 휴직을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안동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햇빛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날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머리부터 허리께까지 주르륵 흘렀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양산 없이는 열 보 이상 전진 불가였다. (마트에서 온 가족 한 개씩 양산을 사길 잘했지.)


하회마을, 병산서원은 마을을 감아도는 낙동강 물줄기와 강을 둘러싼 산세가 어찌나 멋진지 온 가족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광경이 남편의 열정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남편의 사진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월영교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남편은 내게 말했다.


"나는 여행 와서 당신이랑 애들 사진 찍어주는 순간이 제일 행복해."

행복해서 예술혼을 바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내일도 마음껏 행복하게 해 주리라.

2일 차. 한국의 지베르니라는 낙강물길공원은 정말 아름다웠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안동댐은 또 얼마나 멋진지 안동에 와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은 특히 사진 찍기에 좋아서 남편은 얼른 카메라를 켰다.


내 차례에 두 번만에 합격점을 받은 나는 곧 주름 하나 군살 하나 안 보이는 완벽한 사진을 받았다. 아이들이 문제였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 내내 찡그렸고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한 남편은 아이들을 연신 설득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점점 아이들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보고 남편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노라며 당근을 내걸었다. 나도 아이들과 남편의 중재를 위해 웃으며 조금만 힘내자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사진은 다행히 잘 나왔다. 애써주는 게 너무 고맙지만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여보. 적당히 찍으면 안 될까? 애들 너무 힘들어하잖아."

"알았어. 이제 그만 찍지 뭐."

"여보. 그런데 사진 찍는 게 왜 그렇게 행복해?"

"당신이 좋아하잖아. 사진 마음에 든다고 매번 엄청 좋아하잖아."

"......."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었다니. 안동에 오지 않았다면. 월영교 야경을 보지 못했다면 듣지 못했을 말 한마디에 깊은 사랑을 느꼈다. 여행의 참 맛을 오늘에야 알 것 같았다.



여행이 곧 기부다!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의 관광산업이 위축되었다고 한다. 안동도 주말임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안동은 자연경관도 뛰어났지만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업장 상인들도 모두 친절했다. 정말 좋은 기억만 안고 떠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안동에 가서 사랑을 느끼고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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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