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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Oct 27. 2024

주사는 아프고

정기검진 차 병원에 갔다.

나는 검사를 해야 했고, 내 팔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 선생님께, 나는 주사를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주사는 많이 맞아도 적응되지 않는 고통이라며, 안 아픈 주사를 발명하는 사람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것이라 말했다.

어쩌면 주삿바늘이 팔을 뚫는 순간의 고통보다 맞기까지 주사를 마주하는 순간의 고통이 더 클지 모른다.

저릿한 통증과 함께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바라보며, 나는 사랑을 생각했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들.


나뭇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며,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과 어지러운 내 마음을 짐작해 보듯,

이건 사랑, 이건 사랑이 아닌 것. 그렇게 하나씩 기억을 되짚어나갔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공원, 차가운 몸을 데우기 위해 마셨던 트루쏘는 사랑. 비를 뚫고 만나던 날의 축축하고 집요했던 열기는 사랑. 매서운 바람 앞에서 외투의 지퍼를 여며주는 손길은 사랑. 눈이 부실까 손으로 빛을 막아주는 마음은 사랑.


사랑은 지푸라기로 새끼를 꼬아 길어진 밧줄처럼 계속 길게 늘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은 활짝 피어올랐다, 붉게 색이 들었고... 날카로운 유리조각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가지 말라고 소매 끝을 붙잡은 나를 두고 떠나간 사람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것.


그렇게 생각이 미친 순간 팔에 꽂힌 주삿바늘에 하얀색 약물이 들어왔고, 불쾌한 향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내가 무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리고 나는 모르는 장소에서 눈을 떴다.

주삿바늘은 작은 반창고 아래 묵직한 통증을 남기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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