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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27. 2020

군의관, 군인인가? 의사인가?

군의관은 의사이기 전에 군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 반대인가?

군의관이 의사이기 전에 먼저 군인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군인이기 이전에 먼저 의사 그 자체인가? 군대의 야전 지휘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떤 이는 전자를 어떤 이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군의관은 군인 신분인 의사다. 따라서 군인이면서 의사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이 우선인가를 묻는 것은 우매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실제 이런 고민을 하는 군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지만 그 군의관의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군의관 D가 사단 의무대에 배치되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의 각오와 수련의 과정에서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아 주었다. 진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온 부대 내에 퍼졌고, D를 찾는 환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는 너무 바쁜 나머지 진료실과 병실을 오가는 통로에서 조차 환자의 차트를 들고 다니면서 봐야만 했다. 그러던 중, 사단장이 병원에 방문해서 통로를 지나가다가 군의관과 마주쳤다. 바로 앞에 사단장이 올 때까지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던 군의관은 당황했다. 사단장은 자신을 몰라 본 군의관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훑어본 후 가던 길을 향해 갔다. 며칠 후 군의관은 의무대장실로 호출을 받았다. 의무대장이 군의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의무대에 훌륭한 군의관과 어리바리한 군의관이 있다고 사단장이 지휘관 회의시간에 얘기했다고 한다. 훌륭한 군의관과 어리바리한 군의관은 누구였을까?


훌륭한 군의관은 열심히 진료한 군의관 D가 아니었다. 사단장의 눈에 군인답게 보였던 D의 입대 동기이자 의대 동창인 군의관 M이었다. M도 처음 몇 달은 D처럼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진료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군대에서 의사 노릇을 열심히 해봐야 인정받지도 못하고 자기 시간만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가 오면 적당히 본 후 군 병원으로 보내거나 외래 진료를 하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자신을 찾는 환자는 점점 줄었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 D는 진료실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사단장을 비롯한 높은 사람이 의무대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근처를 서성이다가 다가가서 큰 소리로 "충성"하고 절도 있게 경례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날도 사단장이 방문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M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단장이 지나갈 때 목청이 터지도록 "충성"하고 각진 태도로 경례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 사단장 눈에 어리바리한 군의관으로 보인 이는 진료 임무에 최선을 다했던 군의관 M이었다. 너무 바빠서 사단장이 온 것도 모르고 마주 했던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경례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너무 바빴던 그의 흰색 가운은 피와 땀과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D와 M이 군의관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단장은 그 당시 자기 눈에 보인 현상으로만 그들을 비교해서 판단했을 것이다. 깨끗하고 잘 다려진 흰색 가운을 입고 절도 있게 자기에게 경례하는 군의관 M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럽고 구겨진 가운을 입고 사단장이 바로 앞에 서있는 것도 모른 채 경례 조차 하지 않았던 군의관 D는 어리바리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D는 한동안 고심에 빠졌다고 한다. 남은 군의관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할 것인가? 영특한 M처럼 할 것인가?


군의관 D와 M의 일화를 듣고 나면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법률에 명시된 국군의 강령을 보자.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5조(국군의 강령)에 이렇게 적시되어 있다(예전에는 국군의 강령이 국군의 이념과 국군의 사명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1)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
(2) 국군의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3)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굳게 지녀야 한다.

여기서 (1)과 (2)는 집단적 의미인 국군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3)에 명시된 개인으로서의 군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전체 문장의 앞뒤에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문구는 "책임을 완수하는"이다. 즉 부여된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그러면 일반적인 군인과 군의관의 책임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자. 사단장 같은 전투병과 군인의 경우는 (1), (2), (3)에 나오는 국군의 강령을 지키기 위해서 평시에는 전쟁을 억제하고 전시에는 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많이 죽일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군의관의 경우는 전시와 평시의 구분 없이 아군은 물론 적군도 살려내야 한다. 즉, 전투병과 군인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책임이다. 하지만 군의관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아군과 포로로 잡혀 온 적군까지 살리는 것이 그 책임이요 본분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군의관은 의사이기 전에 군인이 먼저 되어야 하는가? 그 반대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작가 자신도 30여 년의 군 생활을 하면서 군의관이 군인이기 전에 의사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5년이 지난 이후였다. 그 이전까지는 앞의 일화에서 나온 사단장보다 훨씬 더 심하게 군의관들을 대했고, 군의관은 기본적으로 기합이 빠진 군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의식의 전환 이후부터는 그들을 의사로서 존중하게 되었고 사람을 살리는 귀한 일을 하는 군의관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야전 전투부대를 떠나서 상급부대의 정책부서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야전부대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조차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군에 복무하고 있거나, 주변에 군의관을 하고 있는 친지나 지인이 있는 독자들은 군의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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