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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24. 2020

도올,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고

우리가 정말 몰랐나? 방관하거나 은폐하거나 조작했던 것은 아닐까?

설 연휴에 책방을 서성이던 중 도올이 쓴 [우린 너무 몰랐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목차를 보니 해방 정국, 제주 4.3, 여순 사건에 대해 우린 너무 몰랐다는 책이었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 바로 책을 구입했다.

사실 최근에 들어서 난 책을 쉽사리 사지 않는다. 퇴직 후 이사를 하면서 30여 년 동안 사서 읽고 책장에 비치해 놓았던 책을 서너 차례에 걸쳐서 정리하고 버렸다. 짐을 줄이자는 아내의 말을 듣고 몇 번을 버티다가 한번 정리해서 버리고, 한번 더 정리해서 버리고, 이사 직전 세 번째로 책을 정리해서 버렸다. 아마 작은 도서관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을 것이다. 또 종교서적 칠십여 권은 교회 친교실에 기증하고, 그래도 버리기 아쉬운 오십여 권은 개인 연구실에 비치했다가 두어 달 전에 공동 휴게실로 옮겨 놓았다. 결국 집에는 반드시 다시 읽을 계획이 있거나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책, 군대로 치면 소수정예요원으로 불릴 수 있는 것만 남겨 놓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책을 사지 않겠다! 아니 한 번만 읽을 책은 구입하지 않겠다고! 이렇게 책을 정리한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도올의 책을 구입한 나의 결정이 실로 대단한 것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지금은 퇴역 군인이지만, 나의 백그라운드는 어쩌면 '진짜 보수'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함께 근무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도록 교육받고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역 후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유가 궁금해졌다. 군인이었을 때는 그들의 얘기를 듣거나, 그들이 쓴 책을 읽어보거나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군인이라는 신분을 빌미로 양쪽의 생각을 균형 있게 들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여하튼 도올의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짧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설 연휴 동안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든 도올!
 방대하고 깊이 있는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도올의 주장이 맞다면,
 난 정말 몰랐다.
 정치권력에 의해 왜곡된 근현대사를 배웠다......


보수 성향이 강한 페이스북 친구들이 난리 났다.


어떤 친구는 댓글을 달고 나서 친절하게 전화까지 했다. 댓글에는 "지금의 세대가 왜곡된 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역사책은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잠시 후 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도대체 요즘 왜 그러냐! 이상해진 것 같다. 불라 불라 불라." 그러면서 덧붙였다. 지난번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던데, 그 책은 역사를 왜곡한 책인데 뭐하러 읽었냐며 일종의 책망까지 했다. 브루스 커밍스로 인해서 북침설이 나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커밍스는 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기 전의 정보를 갖고 북침설을 뒷받침한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읽은 브루스 커밍스는 전쟁 전의 남북 상황을 균형감 있게 썼을 뿐, 책 어느 곳에도 북침에 관한 내용을 쓴 것을 보지 못했는데. 같은 책을 그 친구와 나는 달리 해석했던 모양이다.


다른 후배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도올... 지성인의 가면을 쓴 개잡놈입니다."

한 친구는 조금 점잖은 어조로 썼다. "도올, 그가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소욕대로 외치는 자칭 지식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초, 중, 고 동창인 어떤 친구는, "도올은 돌일 뿐~ 지혜와는 거리가 먼 우석인 듯~"

또 다른 분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그 양반 성경과 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아주 초보적인 말꾼으로만 보이는데."

물론 도올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댓글을 단 친구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다수는 위와 같은 어투였다.


난 도올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의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적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토록 도올에 대해서 강하게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을까?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었다면 나도 진보주의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권력자나 기득권층의 시각보다는 평범한 시민이나 소외 계층의 시각에서 미국과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승자나 가진 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보다는 그 당시의 진실 또는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은, 그때 그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에 그 자리에서 사건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던 당사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역사를 정말 몰랐나? 내 개인의 삶을 돌아보면, 나에게 불리하거나 이득이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방관하거나 은폐하거나 조작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당사자였던 역사의 현장을 되돌아보자. 그 당시 상황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방관하거나 은폐하거나 조작했던 것은 아닐까? 요즈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난 그저 진실이 알고 싶다.


도올의 책 표지 뒷면에 쓰여 있는, 책 본문에서 발췌한, 문장을 옮기면서 이 시간의 글쓰기를 마무리한다.

이 책은 사상이 아니라 운동이다.
이 책은 역사서술이 아니라 우리 의식에 던지는 방할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자라면 이 책을 읽은 후 얻어지는 깨달음을,
그 잊혀진 역사를 만세 만민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방할(棒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주장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후려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토하는 큰소리를 할(喝)이라 함.(불교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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