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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02. 2020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낳는다

우리의 후손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길 기대하며

예순여섯 권의 성경 중 첫 번째 권인 창세기에는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그다음엔 인류의 조상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계보, 이어서 아브람까지의 계보로 이어진다.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야곱까지의 이스라엘 선조들의 역사로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은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신약성경도 맨 앞의 마태복음 첫 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쭉 이어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가 나온다.


성경의 신약과 구약이 시작되는 부분에 계보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집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국내의 여러 문헌에 의하면 한반도에 첫발을 디뎠던 나의 조상은 중국인이었다고 한다. 그 이전은 국내 자료의 부재로 알 수 없다. 나의 본관 수안 계씨(遂安 桂氏)의 시조는, 명(明) 나라 성양 태수(城陽太守) 계경횡(桂炅橫)의 아들이며, 명나라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낸 계석손(桂碩遜)이다. 계석손은 고려말에 귀화하여 수안백(遂安伯)에 봉해졌고, 그가 바로 나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계보가 대에 대를 이어서 현세대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외동아들로 아버지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형과 나를 낳고, 형과 나는 각각 아들과 딸을 낳았다. 형의 자녀와 나의 아들은 모두 결혼을 했고, 나의 딸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때가 되면 그들은 모두 아들, 딸을 낳을 것이다.




성경에 나온 계보와 나의 계보를 장황하게 얘기한 연유는 따로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명제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와 관계 맺기를 좋아하다.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이름이 드러나길 원하고 죽은 이후에도 그 이름의 명예로움이 이어지길 바란다.


자기 이름이 역사 속의 오욕으로 남겨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눈에 보이는 욕심과 몸을 즐겁게 하기 위한 욕망과 자기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기 어렵다.


성경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시작은 미미하나 나중은 창대한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그만큼 평생을 거쳐서 일관되게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 작가 등록을 하면서 프로필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peacemakers의 1/n”이라고 적었다. peacemaker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나는 “화평케 하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과 함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다. 여럿이 한 마음을 품고, 안목과 육신의 정욕을 절제하고 이생의 자랑보단 역사 속에 명예롭게 이름을 남기기 위해 애쓰고 싶다. 형과 나의 자녀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 우리 모두의 후손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길 기대하며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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