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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02. 2020

[역사의 현장] 판문점 둘러보기

냉전의 시발점이자 화해와 협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곳

[판문점 소개]

판문점(板門店)은 한국 전쟁의 정전 협상이 진행된 곳으로,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상 개성 특별시 판문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다. 현재의 판문점은 정전협정 이후 한국전쟁 포로 교환업무를 맡게 된 중립국 인도군의 막사와 포로교환장소로 사용되었던 건물로써, 정전협상이 이뤄진 실제 정전협정 조인 장소는 현재의 판문점보다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장소에 위치해 있다.


정전협정 이후 유엔군과 조선인민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쌍방의 행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 1976년까지는 경계선 없이 양측 경비병과 출입자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이후로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관할 구역이 분할되었다. 2004년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유엔사 군정위)를 이전 용산기지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이전하기로 하였다. 한시적으로 이전 운영한 적이 있지만 주로 용산기지에 있었고, 2020년 현재 유엔군사령부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작전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유엔사 군정위 비서처도 캠프 험프리스의 유엔사 본부 건물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엔군과 한국군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자유의 집'은 여권을 소지한 외국 관광객은 견학이 가능하며, 그 외의 한국 국민과 외국인은 따로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판문점 좌표]

북위 37° 57′ 20″ 동경 126° 40′ 40″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2019년 여름에 판문점을 방문하였다. 회담 전에는 방판 헬멧을 착용하고 권총을 휴대했던 JSA대대 경호요원들이 비무장으로 안내와 안전 통제를 하고 있었다. 북측 군인들도 마찬가지로 비무장이었다. 멀리 북한의 판문각 옥상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관광객들 중의 한두 명이 손을 흔들었다. 관광수칙에 북쪽을 향해 손짓을 하거나 특정 행동을 취하지 않도록 하는 주의사항이 있어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예전보다 북한 쪽도 자유스러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 사진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시 양측 정상들이 지나갔던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의 사잇길이다. 남쪽은 자갈이 깔려있고 북쪽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돌출 부분이 군사분계선이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과 북의 냉전 체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즉, 판문점은 냉전의 시발점이면서 평화를 향한 화해와 협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옅은 청색 건물이 군사정전위원회 양측 위원들이 회의 장소로 사용하는 T-2(주회의실, 왼쪽), T-3(소회의실, 오른쪽) 회의실이다. 북쪽 건물은 판문각이다. @kenny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인 단독 대화를 나누었던 도보 다리다. 이 다리는 중립국 감독위원회 구성원인 스위스, 스웨덴 대표단이 회담장과 그들의 캠프를 오갈 때 주로 사용한다. 다리 끝부분의 녹슨 표지판은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선상에 설치된 1,292개의 군사분계선 표식물 중 하나다. 이 표식물들은 오랜 세월로 인한  풍화로 자연 손실돼서 지금은 180여 개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도보다리 @kenny




남북정상 회담 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 식수한 기념수가 보인다. 나무에 가려져서 북쪽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뒤쪽의 건물은 북한군의 경계초소다.


남북정상회담 기념수 옆의 기념석에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쓰여 있고 남북 정상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kenny




T-2 군정위 본회의실의 내부 모습이다. 이 건물의 절반은 남쪽, 절반은 북쪽에 있다. 하지만 이 건물 내부에서는 남과 북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다. 북측 대표단이 앉는 쪽에 작가가 서서 포즈를 취했다. T-1, 2, 3의 T는 Temporary의 약자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는 임시로 설치한 이 회의실이 70여 년간 사용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T-1은 이 회의실 바로 왼쪽의 흰색 건물로써,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다.

T-2 회담장 내부 모습 @kenny



정상회담 또는 양측 고위급 회담과 적십자 대표 회담 시에 주로 사용하는 평화의 집이다. 내부는 절반씩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다. 양측의 대표단에게 상호 균등한 시설 사용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평화의 집 @kenny

판문점 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JSA 대대에 먼저 들러서 안전수칙 브리핑을 받고,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한 다음, JSA에서 제공하는 버스에 환승하여 안내하는 대로 따르면 된다. 아래 사진은 JSA 대대의 전시관이다. 정전협정 체결식 사진을 비롯한 각종 역사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JSA 대대 전시관 2층 @kenny
JSA 대대 전시관 입구 @kenny





[보충 설명]

판문점은 6ㆍ25전쟁의 산물이다. 65년 정전체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래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개성 북쪽 내봉장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북한군이 무력시위를 하며 방해를 해, 회담장을 조금 더 남쪽인 널문리로 옮겼다. 10월 25일 이곳 작은 주막 앞 콩밭에 친 군용 천막에서 첫 회담이 열렸다. 초가집 네 채만 남아있던 이름 없던 촌마을은 이때부터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널문리에 임시로 설치된 회담장 @오마이뉴스



휴전회담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총 765회 열렸다. 판문점(板門店)이란 이름은 회담에 참여한 중공군이 널문리 주막을 한자로 표기하며 탄생했다. 공식 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ㆍJoint Security Area)'이다. 판문점은 직선거리로 개성에서 10㎞, 서울과 평양에선 각각 52㎞, 147㎞ 떨어져 있다. 군사분계선은 눈에 보이지 않게 그어져 있을 뿐 철조망은 없다.



적색 원이 그려진 곳이 휴전 협상을 진행한 널문리의 회담장소였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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