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사람TYPE_요가
수련 후, 녹초가 되는 수업을 유독 좋아했다. 요가매트 위에 땀방울이 '톡톡' , '두두둑' 하고 떨어지고, 근육 여기저기서 '꼭 나를 써야만 했냐!'하고 아우성치는 듯한 격렬한 움직임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한 동작을 고요하게 오래 유지하는 동작이 힘들었고, 소위 '힐링 요가', '명상 요가' 같은 이름의 요가 수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고, 어쩐지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아서. 꼭 땀을 흘리고, 여기저기가 당기고 아파야 뭔가 한 것 같았고, 그 시간을 보람되게 쓴 것 같았다.
한 요가원 안에서도 여러 선생님을 만날 수가 있다. 그리고 선생님마다 수업의 흐름이나 강도가 다르고,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유난히 요가원에서 자주 반하곤 하는데, 대상은 물론 선생님인 경우가 많다. 멋진 몸과 지도 방법,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분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들려주는 오늘의 내 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 또는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이야기에서 선생님의 내공과 매력을 자주 느끼곤 한다.
탄탄하고 날렵한 몸의 선을 가진 '모아나'가 떠오르는 선생님은 알고 보니 춤을 추던 분이라고 했다. 그것도 꽤 유명한. 선생님의 말, 태도, 움직임에서 유난히 '자유롭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위장하거나 허세로 부풀리거나 티 내는 '자유로움'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 배어있고, 실제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자유로움 같은 것 말이다.
선생님의 담당 수업은 정적인 수업으로, 매주 주제와 노리는 부위가 달라지곤 했다. 예를 들면, 지난주는 '골반'을 중점적으로 풀어주었다면, 이번 주는 '어깨'에 편안함을 주는 동작 위주로, 그리고 다음 주는 '허벅지' 힘을 기를 수 있는 동작 위주로 구성되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매주 주제가 되는 신체부위가 다른 만큼, 수업 방법도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수업에 비해 한 동작을 유지하는 시간이 긴 편이었다. 어느 때는 한 동작을 '3분'동안 이어가기도 했으니까. 한 동작에 머물러 있기에 3분은 꽤 긴 시간이었다.
몸은,
한 동작에 머무르며
호흡하는 동안 바뀌어간다.
처음에는 동작에 집중하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유지하려고 해도, 어느샌가, '저녁식사로는 뭘 가볍게 먹어야 할까.' '내일 춥다는데 뭘 입지?' '오늘 쓰레기 버리는 날인데 더 채워버릴 게 없나?' 등 각종 소박한 생활 고민들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특히나 회사나 연인으로부터 비상식적이거나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격렬한 움직임을 통해서 풀어내고 빨리 녹초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동작을 유지하는 동안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생각이 텅 비워지기는커녕 한 곳에 모여버리니 더 괴로웠고, 그래서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개운했다. 수업이 끝나고 난 저녁 또는 다음날이면, 어제 땀을 흘리면서 격하게 운동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가벼웠다. 골반을 주제로 풀어준 다음 날에는 골반의 가동범위가 달라진 덕분에 몸의 움직임이 더 부드러워졌다. 몸의 한 부위가 가벼울 뿐인데도 기분까지 덩달아 상쾌해졌다. 게다가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버무려져 견디기 힘들었던 '3분' 가까이 되는 시간도 집중할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집중이라기보다는 '텅 비워지기'에 가까웠지만. 뒤죽박죽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많은 생각들에 틈이 생기고 여백이 자라나, 텅 빈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텅 빈 공간'의 중심에는 '호흡'이 균일하게 자리 잡았다.
아픈 부위로 호흡 보내기
요가를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등으로 숨 쉬세요." "아픈 곳으로 호흡을 보내세요." 같은 말들 말이다. 비뚤어진 골반을 바로잡는데 효과적이라는 비둘기 자세 같은 주리를 틀어 놓은 듯한 고통스러운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호흡을 아픈 곳으로 보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호흡을 어떻게 거기로 보내란 거지? 그걸 느낄 수가 있나?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해?' 하는 불신의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물론 말로 내뱉을 수는 없었지만.
하지만, 이제는 호흡을 보낸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몸을 쓰는 일에 호흡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한 자세를 유지할 때 유독 아픈 곳으로 호흡을 보내다 보면, 그게 3분이든 5분이든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호흡을 할수록 그 부위에 집중되던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고, 경직되어 있던 부분이 서서히 느슨해지는 느낌이 든다. 두 다리를 펴고 매트에 앉아 있을 때, 숨을 참은 채로 상체를 내리려 해 봤자 용수철처럼 튕기는 뻣뻣한 고통만 들뿐이다. 하지만 조금씩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나무늘보처럼 시간을 들여 내려가면, 고통보다는 서서히 늘어지는 편안함을 맛볼 수 있다.
숨 쉬는 동안 바뀌는,
몸
어떤 동작도 숨을 참고 버티며 유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몸이 제대로 바뀌려면, 동작을 유지하면서 호흡을 이어가고, 그 자세에 머무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시간이 제대로 많이 쌓일수록 동작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몸이 답해주고 바뀌어 주는 게 아닐까.
강한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 아쉬탕가로 내 몸과 정신을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것과 '3분' 또는 한참 동안 한 동작에 머무르며 숨을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가지각색의 움직임을 만나는 것. 이 과정을 통해서 결국엔, 내가 조금 더 다듬어지고 몸을 따라 마음과 정신도 바뀌어가기를.
물론, 마음이 가는 속도만큼 빠른 속도로 몸이 바뀌어주지는 않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내겐 멈추지 않고 움직임을 쌓아 나가는 의미로 충분하다.
그래서, 참다 참다 참지 말아야 할 것까지 참아내다, 나도 모르게 망가져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던 내 몸과 내 마음, 내 정신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단단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게, 나를 더 돕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니까.
사진 출처: Image by RENE RAUSCHENBERGER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