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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킴 Jun 09. 2023

오랜만에 병원에 다녀왔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계단에서 내려오시는 중년의 여성분께 인사를 90도로 꾸벅했다. 

언뜻 보았을 때 내 감으로는 이 분은 이제껏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던 병원 관계자분이 맞는 것 같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가워요' 





오늘은 아침 5시 반부터 눈이 떠졌다. 평소면 9시에 일어나는데 어젯밤부터 괜스레 긴장한 탓이다.

이 마음을 좀 준비해서 나가야 하기에 서둘러 샤워를 하고 소파에 가만히 앉았다가 나갈 채비를 했다.

 

요새는 매일매일이 집과 작업실만 오갔는데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있다. 

지난해부터 일부 내 작품을 병원에 기부하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강북 삼성병원과 연이 닿게 되어 병원 측에서 감사하게도 좋은 장소에 전시와 영구 소장을 해주시기로 했다.  

21년도 투병을 했을 때부터 작업한 그림들을 다른 갤러리 전시나 판매에 안 내보내고 조금씩 모아뒀다가 6점을 오늘 드디어 병원에 전달 및 전시하는 날이다. 


어제는 오후 네시 반쯤에 평소같이 일하는 미술품 운송팀이 작품을 잘 픽업해 갔고 병원에 기부하는 작품이니 조심히 잘 부탁한다고 한번 더 언급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희 모두아트인데요. 저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작품 기부하시는 거면 함께 좋은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저희 운송 설치비용 안 받겠습니다.'


감사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실 23년도 들어서는 미술 시장의 기세가 급격하게 꺾여 작품 활동하는 여유가 없었기에 한 푼 한 푼 더 아끼며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공에 대고 만나 뵙지 못한 운송사 대표님과 픽업 담당자님께 감사하단 인사를 서너 번 했다. 

목요일 오전 9시 반부터 설치를 한다고 했으니 나도 그에 맞춰 비슷한 시간에 방문을 하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목요일이 되었다. 

강북 삼성병원은 미술관을 오갈 때 보았던 터라 조심스레 운전을 하며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몇 개의 동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내 작품은 메인동인 A동에 위치하기로 했다.

'와 병원이 관리가 잘되어 있구나' 

 1968년도에 설립된 강북 삼성 병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영문 슬로건으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내 작품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주차를 하고 작품을 설치하기로 한 A동 건물 1층에 갔더니


내 예상보다 큰 패널에 설명글이... 떡하니 있었다.

'앗... ' 조금 쑥스러워서 사진만 후딱 찍고 작업 설치를 도왔다. 

오가는 분들은 설치 전 작품이 궁금한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가신 분들도 계셨다.

그러던 와중에 작은 어린이가 환자복을 입고 엄마 손을 잡고 그림을 보고 갔다. 


기부하는 작품 중에는 어린아이 환자들을 위한 튤립 그림도 있었다. 

' 그 작품은 조금 낮게 설치해 주세요. 네네. 아이들도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볼 수 있게..'



이전에 내가 병원을 한참 다닐 적에는 매달 마주하는 작은 어린이가 있었다.

채혈은 어른들도 무서운데 어찌나 씩씩한지 그 작은 아이가 안 울고 매번 피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는 게

대견할 따름이었다. 처음 아이를 봤을 땐 엄마 옆에서 게임기를 가지고 놀며 머리숱도 많아서 단순한 치료로 왔을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돌아보니 바뀐 건 아이의 머리숱이었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아무튼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나중에 그림을 기부하게 되면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그림을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고 happy family라는 튤립 가족의 그림도 함께 전시하게 되었다.





작품들은 모두 여섯 점으로 병원의 A동 1층 > 2층 계단에 전시되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작품을 설치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병원 사회복시자분이 음료를 사준다고 스타벅스로 데려와주셨다.

다시 90도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핑크 드링크를 선택했다. (감사히 그란데 사이즈로 해주심..)

그리고 다른 운송사 팀원 분들과 함께 음료를 마시고 헤어지며 난 작업실로 왔다.





병원에 작품을 기부한다는 것은 사실 내 작은 용기에서 시작이 되었다.

투병시기에 가장 큰 마음과 용기를 얻은 것은 누군가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그 일상이었고, 나도 저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었다. 


'Sometimes even to live is an act of courage'



내 작품을 통해 누군가 본인의 소중한 일상을 되돌아봤으면, 삶은 무한하지 않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마음을 나눴으면, 하루를 살더라도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들을 담아 기부했다.


사실 병원에 있노라면 시간이 어찌나 안 가던지 핸드폰도 재미가 없어지고는 한다.  많이 오고 가는 복도에 환우들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으면, 그리고 다시 원래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으면 좋겠단 간절한 마음과 누군가의 존재만으로 용기가 될 때가 있듯이 일상으로 돌아온 내 존재가 누군가의 조금 더 힘낼 희망이 되면 좋겠단 생각.



모두의 일상을 응원하며


오늘의 일기 끝.



추신, 

아 근데 내 작품이 병원에 영구 소장이 된다는 것은 정말 가문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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