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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Jun 04. 2024

약속의 계절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 김소월 <개여울> 중에서


까까머리 학창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만난 소월과, 흰머리 환갑 시절 박연준 작가의 <듣는 사람>에서 만난 소월은 다르게 온다. <진달래 꽃> 시집을 구해 다시 읽어 봐야겠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의 계절은 소월에게도 봄이었다.

아주 가는 건 쌀쌀과 매정이고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은 아련과 절절이다.

"그러한 약속"은 "그리운 약속"이려나.

쌀쌀과 아련이 뒤섞이고 매정과 절절이 교차하는 계절. 봄이 가고 있다.


여름이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한낮의 체감온도뿐 아니라 창문틈으로 우수수 쏟아지는 햇살의 각도와 채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늦봄의 노을은 다정하다. 여름의 노을처럼 화들짝 뜨겁지 않고, 무거운 몸 쓰러지듯 창문 틈 넘어오는 가을의 노을과 다르다. 늦봄의 노을은 친근하다. 겨울의 떨림을 포근히 덮어주고 여름의 진땀을 예견하며 미리 함께 대비한다. 늦봄의 노을은 마음깊다.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하며 처마 밑에서 쓸쓸히 술 한잔 할 걸 알기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며 남은 자를 위로한다.


분명하다. 나는 이 봄을 그리워할 것이다. 절절하게.

기나긴 겨우내 유난히 기다려 왔기에.

선명하다. 나는 이 봄을 기억할 것이다. 오래도록.

절절하게 해적이던 내가 뚜벅뚜벅 걸어온 나를 만났기에.

확실하다. 나는 이 봄을 다시 기다릴 것이다. 담담하게.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 약속을 믿기에.



그러니

노래하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그리운 봄과

손깍지 꼭 끼고

약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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