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무게 - 최인호
문장은 무겁다.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문장의 존재 근거다. 그것은 문장을 품은 산이며 바다이자 우주다. 그 속에는 태초의 시간과 공간이 있고, 눈앞의 경험과 감각이 녹아 있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별빛들이 숨어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느끼고, 상상하며, 곱씹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날 뿐이다.
하지만 단어들의 연결이 무조건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며, 문장이라고 반드시 여백을 가지는 것 또한 아니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연결한다고 해도 문장에 무게가 없다면, 그것은 여백을 갖지 못한 하나의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여백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추사의 세한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