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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Jul 09. 2024

호흡의 무게


문장의 무게 - 최인호

 문장은 무겁다.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문장의 존재 근거다. 그것은 문장을 품은 산이며 바다이자 우주다. 그 속에는 태초의 시간과 공간이 있고, 눈앞의 경험과 감각이 녹아 있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별빛들이 숨어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느끼고, 상상하며, 곱씹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날 뿐이다.

하지만 단어들의 연결이 무조건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며, 문장이라고 반드시 여백을 가지는 것 또한 아니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연결한다고 해도 문장에 무게가 없다면, 그것은 여백을 갖지 못한 하나의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여백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추사의 세한도처럼 말이다.



호흡의 무게 - 문학소년

호흡과 호흡사이에 흐르는 건 무의식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공기처럼 의식하지 못한다. 일상의 호흡이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상황과 뜻 모를 현상에 억지로라도 의식을 깨우고 자세 바로 잡아 고쳐 앉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플 때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그럴 때마다 몸을 일으켜 찾는 것은 의식이고 우선 바꾸는 것은 호흡이다.

코로 들이쉬고 풍선처럼 배를 부풀린 후, 입으로 내뱉으며 배를 등 끝까지 천천히 안으로 잡아당긴다.

느린 호흡. 복식호흡이다. 들이쉬며 들어오는 건 태초의 우주와 별에서 온 소망이며 내뱉으며 나가는 건 존재의 불안과 집요한 미련이다.

들이쉬고 내뱉는 사이의 공백은, 일상의 번잡한 호흡에 없는 이 시간은, 내 문장의 여백이고 짧은 시의 침묵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시간, 더 깊은 침묵이 필요한 시간,
몸과 마음이 균형의 추를 찾아 가뿐히 올라타는 리듬의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함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의식적으로 신호를 보내어 알린다. 그 신호를 무의식으로 흐르게 해야 함이 나의 과제다. 저절로 생겨나는 여백을 꿈꾼다.

느린 호흡은 당장은 무겁지만 천천히 가벼워지리라.
잠자는 아기의 호흡처럼. 비어있는 칠판처럼.
세한도의 여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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