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 오는 소리에 뒤척였는데, 새벽에 방문 열어보니 온 세상 하얗게 눈이 내렸더군요. 핑크색방 빗자루로 제방과 옆방 어머니방 문 앞에 급한 데로 길을 냅니다. 손바닥만 한 빗자루지만 순식간에 눈을 치웁니다. 군대 다녀온 이 땅의 남자들은 눈과의 전투에 아주 선수들이라죠?
비와 눈이 섞인 데다가 낙엽이 채 떠나기 전에 서로 셋이 겹쳐, 산책길은 철퍽이다 미끄럽더니 운동화 안으로 스며들어 시린 발마저 길이 되었습니다.
길 위에 선 인간은 그럼에도 춤을 춥니다.
마침내 길이 춤을 춥니다.
눈밭에 풀어놓은 강아지 마냥 신이 납니다.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는 약속은 없어도 흥이 납니다.
춤추다 걷다 그러다 쓰리 미끌 완 꽈당했습니다.
올 겨울은 또 얼마나 꽈당할지요. 허당은 그저 헛웃음만 납니다. 언제나 철들지 헛기침만 납니다.
저 계단에선 또 얼마나 미끄러져 우당탕 거릴지요. 그럼에도 슬며시 미소 집니다. 옆방 어머님이 그새 두꺼운 종이 몇 장 깔아 놓으셨거든요. 마트 왕창 세일도 한다니 올커니 들여다봅니다. 김장김치 한 포기도 문고리에 걸어 놓으셨네요. 산타 할머니가 벌써 다녀가셨나 봅니다. 부지런도 하셔라.
바야흐로 겨울. 계절의 손바뀜이 타짜 아귀가 밑장 빼기 하듯 어지럽고 현란하지만 그럼에도 겨울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당황하거나 떨지 않습니다. 밤새 치운 작은 길에, 살며시 깔아 놓은 종이 몇 장에, 싱그러운 김치 한 포기에 충분히 따스해집니다. 항구의 댄서들과 옥탑방 이웃과 다시 겨울을 맞이합니다. 춤추는 길 위에서 함께 다정을 준비합니다.
그래요. 강추위와 폭설에 대항하는 우리의 무기는 손바닥만 한 다정과 몇 장의 염려입니다. 서로에게 주고 함께 웃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