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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Nov 29. 2024

하늘에서 시가 내려와요


요즘 꽂힌 게 있다.
"뭐뭐 했다고 뭐뭐 하시다니요"라는 문장의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제목으로 글도 몇 개 쓰고 하루종일 방구석에서 온통 이 생각뿐이다. 그렇다고 식음을 전폐하진 않지만, 뭔가에 꽂히면 하여튼 적당히를 모른다. 엄니가 전화를 주셨는데 "기침하셨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했다가 무슨 흰소리냐며 야단 맞았다. 아무튼, 이런 인간을 상남자라 부르면 좋으련만. 껄껄껄.

벗님들이 이미 예상하셨다시피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이 구절 때문에 생긴 꽂힘이다. 한 줄의 문장 속에 그리움, 애정, 다정이 가득하며 그윽하다. 화자와 청자 간의 러브스토리? 도 사뭇 궁금하다. 어떤 관계이길래 이토록 절절하거나 낭만 뿜뿜인가. 하루에도 열두번 시의 해석이 달라지고 제멋대로 스토리텔링도 해본다.

어디 한번 전문을 읽어보자.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시인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서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세상에,
감동은 춤추는데
어려운 말 한마디 없이도
시는 어렵다.
어려우니 이 땅의 시인들께 우선 리스펙을 보내야 마땅하다.

이미지가 먼저고 시인이 있으며 시가 따라온다고 학교에서 시교수님께 배웠지만 역시나 어렵다. 어려워서 이리저리 헤메고 애써 내외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매력적인 문장을 맞이하면 마음 달아 저혼자 어찌할 바 모른다.

시가 그립다.
따라쟁이인 나는 그리움에 지쳐 용기 내본다.


"시가 그립다고 눈사람을 만드시다니요"


허접하다. 창의성도 콘텍스트도 열악하며 억지가 춘향이다.


그래도 이렇게 시도하고 따라하고 꽂히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가 본 세상의 이미지가

뚜벅뚜벅 걸어오겠지
눈사람처럼

포슬포슬 내려오겠지
함박눈처럼

툭 또는 데굴데굴
뽀드득 아니면 성큼성큼
사무치는 달빛 눈빛처럼

눈 그치고 새벽달 뜬다
내 달을 보고 나는
무엇이 그려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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