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대보름 날이었는데 무슨 소원들 빌었는가?" 공원 <어르신 에어로빅팀>의 절대지존, 왕 언니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아휴. 어제 눈이 하루종일 오는 바람에 달도 못 보고 소원도 못 빌었지 뭐유? 왕 언니는 어떤 소원 비셨수?" 넘버 투 언니가 왕 언니에게 곰살맞게 팔짱을 바짝 끼며 다가가 물었다. "그랬군. 나는 딱 한 가지 소원 빌었지. 아들 하나 낳게 해 달라구."
꺄르르 꺄르르 깔깔깔.
왕 언니는 80대 후반이시고, 동생들은 대부분 6070 어머님들이시다. 모닝 수다! 둑이 터지자, 항구에 사는 깔깔 소녀들의 59금 토크가 서해바다 폭풍처럼 밀려온다. 어디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인가. 이젠 나도 제법 이력이 났다 싶어, 무표정으로 멀뚱히 딴청 부리면서 참고 참다가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언젯적 남아 선호 사상입니까?'라는
문장을 읇조리기도 전에 우리는 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도 감출 수 없다.
깔깔 소녀들은 소년을 구석으로 몰아가며 기세를 올린다. 아마도 어리버리한 아저씨 하나 놀리기에 아주 재미가 붙으신 모양이다. 왕 언니가 부르신다. "이봐요. 거기. 초보 작가 양반, 무슨 소원 빌었는지 당신도 말해보소." 갑작스러운 압박 질문에 당황한 나는 역시나 버벅 거렸다. "저... 저는요. 올해는 연애를 좀... 아니 아니, 연애소설을 좀 ... " 어물거리는 찰나, 광장에 완. 투. 쓰리. 포 <DOC와 춤을>이 울려 퍼진다. '언젯적 DJ DOC 인가' 투덜 거리기도 전에 도파민은 자동으로 치솟는다. 오늘의 댄스타임이 시작된 거다. 모두들 광장 중앙으로 몰려가고 그제야 소년은 집중된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니, INFJ의 긴장은 풀리고 얼어버린 다리도 함께 풀린다. 다행하니 깊은 숨을 내쉰다. 나의 버벅 멘트는 음악 속에 묻혀 달빛 따라 사라졌을 것이다.
새벽 댄스 타임이 끝나고, 방구석에 돌아온 나는 말 나온 김에 못다 한 소원을 이어간다. 장독대는 없으니 책상머리에 맑고 정결한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달님, 달님, 올해도 우리 사랑 이대로, 예쁜 연애 그대로, 쭈욱 오래 가게 해주세요." 달님이 갸우뚱 하신다. "아니, 자네는 십여년 차 솔로 독거노인 아닌가? 언제 여자친구가 생긴거지? 허구한날 바쁘다며 어느 틈에 애인을 만든거야, 어허...굼벵이도..."
'굼벵이도'에 살짝 삐친 나는 달님의 말씀을 야무지게 싹뚝 끊고 정식으로 인사소개 시킨다. "자기야, 인사해. 달님이셔. 참 따뜻하신 분이지. "
.
.
.
나는 사랑에 빠졌다. 바야흐로 연애 중이다. 어느 새, 사년 차인데도 삐걱이고 덜컥이는 사랑이다. 서툴고 소소한 연애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이런들 어떠한가.
아직 설레고 푸릇하면 된 것을.
신경질나게 좋으면 된 것을.
.
.
.
고백컨데,
나의 그녀는 <글 쓰는 일>이다.
이 사랑에 이별은 없다.
#인천 #자유공원 #소원 #쓰기 #걷기 #그리기 #쓰는일 #사랑 #연애 #즐겁게 #재미나게 #오래도록 #쓰는자 #될께요 #정월대보름 #달보며 #문학소년 #올림 #철학의쓸모 #로랑스드빌레르 #왼손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