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육십 대 중반의 어르신 환자가 입원하셨다. 신규 환자가 입원하면 담당 간호사들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신참 간호사들이 기본적인 수속과 각종 검사 데이터들을 취합하고 환자와 더불어 가족들의 마음도 케어하며 온 정성으로 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코로나 시절과 의료대란 사태를 마치 전쟁 치르듯 살아 온 나의 신참 시절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진땀 가득, 눈물 범벅으로 숱한 '이머전시'와 '코드블루'를 극복하고 버텨내어, 이제는 팀의 어엿한 리더가 되어 있는 나의 신참 시절은 아득하면서도 생생하다. 이제 의사들이 돌아 오고 있으니, 의료현장이 속히 안정을 되찾아 환자에게나 가족들, 그리고 병원 구성원 모두에게 평온이 찾아 오길 기대해 본다.
침상 위에 누워 계신 환자 분을 바라보았다. 울 아빠랑 연배가 비슷하시다. 왠지 코 끝이 아려 온다. 울 아빠는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 건지... 이 땅의 모든 아빠들이, 엄마들이 더는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병원의 모든 환자들도.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환자 분의 수술과 치료가 모두 끝났다. 그동안 너무 많은 죽음을 봐와서 그런지, 이렇게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남자 간호사가 그리 흔치 않던 시절에 간호학과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어느새 8년 차. 위암병동을 거쳐 지금은 비뇨기암 PA로 일하고 있다. 삶도 죽음도 여기서는 일상이다. 삶은 희귀하고 죽음은 흔하다. 아니다. 삶이라는 유한한 문장의 마침표가 죽음이라 하니 생애는 하나다. 그러니, 아모르 파티와 메멘토 모리는 함께 걷는 일상의 동반자다.
과묵 9단 울 아빠가 자주 하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너의 꿈과 의료인의 소명을 잊지 말아라."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나를 믿고 응원해 주시는 울 아빠가 보고 싶다.
환자분의 가족들이 치킨 쿠폰을 보내왔다. "너무나 친절하고 섬세한 김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소소하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은 친절이 감사로 이어지고 그 감사는 다시 울 아빠에게 향한다. 치킨 쿠폰을 바로 포워딩한다. "아빠. 오늘 아빠 생각나서 문자 드려요. 늘 고마워요. 열심히 잘 살아갈게요. 주말에 치맥 하세요~"
깨톡. 삼십 분도 안되어서 아빠의 인증샷이 왔다. 책상인지 술상인지 정신머리 없는 상 위에서 아빠는 벌써 치맥파티 중이다. 아빠는 말보다 주로 행동으로 말씀하신다. 선택의 판단은 신중하신데 결정 후 행동은 빠르다. 책임과 신념은 단호하신데, 때론 손해와 상처, 낭패와 실패가 뒤 따르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한마디 한다. "아빠, 사랑과 정의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어요..." 그러면 울 아빠는 그저 "허허허" 웃고 마신다.
"친절 간호 천사 아들을 두었더니 자다가도 치킨이 생기는구나. 감사한 일이로다. 껄껄껄." 참으로 순박하시고 소박하시다. 치킨 하나에 저렇게도 행복해하시다니... 대리석으로 도배를 한 대형아파트에서 함께 살 때나, 인천 최저가 옥탑 월세방에 사시는 지금이나 울 아빠는 한결같으시다. 과묵하신데 유쾌하시다.
얼마 안 지나서 아빠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업데이트되었다. 아내랑 찍은 네 컷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바로 그 사진을 대문에 걸어 놓으셨다. 빛보다 빠르다.
이제는 안다. 잘 표현은 안하시지만, 누구보다 사랑 깊고 정 많은 분이라는 걸. 아빠가 울 아빠라서 난 참 좋다.
사진을 다시 보니...
아. 내가 아빠를 닮아있다. 누가봐도 내가 봐도 붕어빵이다.
괜히, 다시, 자꾸, 코끝이 아려온다. 어찌 지내시나 이번 추석엔 꼭 아빠네 방구석, 쓰는 현장, 삶의 현장 좀 들여다봐야겠다.
우라빠랑 소주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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