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글쓰기의 공통점에 대하여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남편의 꼬드김에, 길을 또 따라나섰다.
분명 고생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남편이 가자고 안 하면 절대 혼자서는 안 갈걸 알기에, 휴가를 내고 울산행 새벽 기차를 탔다. 이번 행선지는 '영남 알프스'. 산을 좋아하는 남편도 아직 가보지 못한, 나는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미지의 장소였다.
영남 알프스는 울산과 밀양, 양산에 걸쳐 있는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산들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서, 예전부터 알프스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단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한국에서 웬 알프스인가 싶었다. 목동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만 떠오르던 나는,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풍경에 녹아드니 저절로 그 별칭이 납득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초겨울에 가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 곳. 한국에 살면서 이런 곳을 이제야 알았다니!
이틀에 거친 영남 알프스 산행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만은 않았다.
평소 사무실에만 10시간 넘게 앉아 있으면서 하루 5 천보나 걸을까 싶은 내 체력으로는 무리였다. 힘든 구간이 나올 때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미 올라온 길이라 쉽게 내려갈 수도 없었다. 남편 없이는 길을 찾지도 못하겠으니 헤어져 각자 갈 길을 갈 수도 없었고. 어쨌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계속 걷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등산이랑 글 쓰는 거랑 비슷한데?'
우선 등산도 글쓰기도, 시작이 가장 어렵다. 등산로 입구에서 저 멀리 보이는 정상을 올려다보면 막막하기 짝이 없다. 과연 내가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싶어 겁부터 났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첫 브런치 작가 도전은, 마음먹는데 까지만 반년이 걸렸다. 첫 문장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워 깜빡이는 커서만 뚫어지게 쳐다본 적도 많다.
하지만 둘 다, 하다 보니 결국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걷다 보니, 어느덧 정상 근처에 와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씩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벌써 2년이 지났다. 시작하기 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다. 다리가 아프고, 땀은 줄줄 흐르고, 이 길이 맞는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 글쓰기는 어떻고. 일하느냐 바쁠 때는 글쓰기가 고되게 느껴져 자꾸만 멀리하고 밀어냈다. 글을 써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서 뭐 하나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런 마음을 살살 달래 가며, 그저 한 걸음 내딛고 한 문장씩 쓰다 보니, 나는 달라져 있었다. 뭐 대단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어도,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는 했다. 하루 1만보만 걸어도 힘들다고 2박 3일 침대에 누워있던 내가, 인생 처음으로 하루 20km, 3만보를 찍어봤다. 일기조차 극혐 하며 30일 치 방학 숙제를 벼락치기했던 내가, 지금은 주 2-3회나 글을 쓰고 있다. 한 걸음, 한 문장이 쌓인 누적의 힘이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1순위 이유로, 함께 걷는, 함께 쓰는 사람들을 꼽아 본다. 등산은 철저히 내 두 발로 올라가야 하는 일이지만, 옆에서 페이스를 맞춰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상하게 덜 힘들다. 평소 웬수같은 남편이지만, 묵묵히 앞에서 길을 터주고 쉬어 가라며 간식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 걸음 내딛을 힘이 났다. 혼자였다면 아마 영남 알프스는커녕, 동네 뒷산도 올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문장은 내 손으로 써 내려가야 하지만, 곁에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오래갈 수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몇 달간 혼자 헤매다가 만난 글쓰기 모임에서, 나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글을 쓰고 있는 동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내려갈 힘이 생겼다. 게다가 독자분들이 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호랑이 힘이 샘솟는 기분이다.
이 둘 모두, 혼자 하는 일이지만 함께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함께 걷고, 함께 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한 걸음 내딛으며, 한 문장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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