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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Nov 15. 2024

힘든 순간에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나

고난에서 나오는 통찰

회사를 다니며 '나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니, 이 질문 자체가 낯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왜 '나 자신'을 생각하는지 말이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다급하게 걸려온 고객의 전화를 받거나 혹은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회사 뒷담화을 하기에도 시간과 에너지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소 하루 8시간, 직장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이 시간 동안 나에게 가장 중요하거나 민감한 주제는 업무, 상사, 동료, 평가, 승진 및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변화 등이다. 회사에서의 생존과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정보들 말이다. 여기에 '나 자신'이라는 항목은 포함되기 어렵다. 만약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해보고 싶지만,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만약 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면 그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다. 회사에 다니는 기간만큼은 말이다. 처음에는 그 일 자체도 처음 하는 일이라 신선하고 흥미롭겠지만, 언젠가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제야 생각한다.

'아, 이직해야겠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나의 경우 회사 생활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 순간은, 바로 '힘든 때'이다.

일이 재밌어 미친 듯이 일에 몰입할 때는, 집에 와서도 일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걸 조금 더 잘 해낼까 고민하는데,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다 업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고, 승진을 할 때는, 나 자신이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마냥 기분 좋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외부로 부의 인정은 마치 마약처럼, 서서히 나를 중독시켜 갔다. 회사와 업무에 지금보다 더 몰두하면, 앞으로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좀먹게 하고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있다고 믿었다. 나의 생각보다는 '남의 잣대'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 자신'은 내 회사 생활에 별로 필요하지 않은 단어였다.


그러나 회사 생활에서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흔들렸다.

시장이 힘들어지면 내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고, 조직 개편 때마다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상사가 교체되거나 동료가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을 때면, 내 목숨도 하루살이겠구나 생각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폭삭 말아먹었을 때도, 이렇게 가다가는 내 일로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팀원이 퇴사를 하면, 마치 내 탓인 것 같아 밤잠을 설치고 괴로워했다. 

외부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의 변화도 나를 힘들게 했다. 멀쩡히 잘하던 일이, 갑자기 지루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실 갑자기라기보다는, 매일 하던 일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내가 앞으로 이 일을 똑같이 하면서 여기서 1년, 3년, 5년을 다닌다는 미래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지루한 인생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동료들과 회의를 할 때면, 내 입에서는 부정적인 단어만 흘러나왔다. 이걸 해도 안 될 것이고, 저걸 해도 어차피 안 된다고 얘기하는 나를 발견하면, 소름이 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괴로운 순간마다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동안 일을 하느냐,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냐, 살펴볼 겨를도 없었던 '나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시련의 순간마다 외부를 향해 욕을 하다가도, 돌고 돌아 찾게 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어떤 일들에 가슴이 설레었나. 앞으로 뭘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아니, 이런 거창한 질문부터 시작한 건 아니었다. 길을 가다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심장을 쿵쾅대게 만드는 선율이 나오면,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이 노래가 왜 좋은 걸까 조금씩 생각했다. 다이어리를 쓰다가, 나한테 딱 맞는 펜촉 굵기인 0.4mm를 찾았을 때도 유레카를 외쳤다. 나에게 왜 이 펜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며 깨달았다.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구나. 다양한 색을 좋아하는구나 등등의 나의 취향과 선호를 찾아갔다. 일상의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부터, 나를 차차 발견하고 알아가고 있었다.


직장생활 17년 차, 시련과 고비는 수시로 찾아왔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힘든 순간들 덕분에, 그동안 등한시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취향의 발견으로부터 시작한 나 자신의 탐구는,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의 질문으로까지 발전했다.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외부에서 태풍이 불어 내가 날아갈 것만 같을 때도, '나 자신'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한다. 고난은 나를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 나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의 의미를 발견하게 만들었고,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하는 삶을 살리라 결심하게 만들었다. 

힘든 순간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시라 권하고 싶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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