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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줌마의 스터디 카페 탐방기

'스카' 가보신 적 있나요?

by 수풀림

당장이라도 피크닉을 떠나야 것 같은 어느 찬란한 주말의 봄날.

저는 가방에 샌드위치 대신 무거운 노트북을 넣고, 다이어리와 펜까지 잔뜩 짊어지고 집을 나섰어요. 제가 향한 곳은 공원도 해변도 아닌,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스터디 카페. 걸어가는 길, 햇볓은 어찌나 따사롭고 눈부시던지. 가볍게 얼굴을 스치는 살랑바람은 또 얼마나 상쾌했는지요. 연두빛 나무 그늘에 앉아 쉬어가기 딱 좋은 날씨였어요. 억지로 발걸음을 돌려 우중충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요.


하필이면 일이 몰릴대로 몰려 야근을 해도 끝나지 않더라고요. 결국 주말까지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죠. 카페는 오래 있기 눈치보였고, 도서관에서는 노트북 쓰기가 자유롭지 않더라고. 그래서 요즘 핫하다는 스터디 카페를 점찍고, 중2 딸내미에게 사전조사를 했어요. 과연 스터디카페란 어떤 곳인지 꼬치꼬치 물어봤어죠. 처음 가보는거라 약간 긴장도 되었거든요.

"스카?(줄임말이라네요;;) 거긴 왜? 엄마도 가려고?"

음...왠지 물어봤다가 손해만 본 느낌. 살짝 무시당하는 기분도 들었고요. 엄마는 그런데 가면 안되냐 받아치자, 그제야 쿨내나는 답을 해줬어요.

"아~~ 나도 지난번에 가봤는데, 애들 많더라. 뭐, 어른들도 있긴 한데, 한번 가봐."


그렇게 도착한 동네 스터디 카페.

처음엔 그냥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어라, 입장부터가 난관이네요. 회원가입, QR코드 생성, 좌석 지정… 이 모든 걸 키오스크에서 하라고 하더라구요. 음식 주문할 때는 간편하게 썼던 키오스크가, 왜 이리 복잡하게 느껴지던지요. 안내문을 따라 이것저것 해보는데, 등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어요. 기다리고 있던 고등학생 친구에게 먼저 양보를 하고, 그가 하는 걸 힐끗힐끗 쳐다봤죠. 손가락이 춤추듯 빠르게 터치하며 한 번에 뚝딱 끝내는 모습이 어찌나 능숙해 보이던지요. 그를 보며 따라해서 저도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입장할 수 있었어요.


저는 스터디카페라고 해서 막연히 옛날 독서실을 떠올렸거든요.

컴컴한 조명에 칸막이가 있는 책상, 숨막힐듯한 정적에서 들려오는 사각사각 펜과 종이 넘기는 소리. 더벅머리에 슬리퍼 차림의 총무가, 자신도 고시 공부를 하며 새벽까지 지키고 있는 그런 공간 말이에요.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 상상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어요. 채광 좋은 밝은 공간, 조용한 음악, 은은한 조명, 정숙하지만 딱딱하진 않은 분위기. 마치 카페와 도서관의 중간쯤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칸막이 책상도 있었지만,오픈형 테이블, 창가 좌석,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라운지까지 갖춰져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학생뿐만이 아니라 저 같은 40대 직장인도 꽤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노트북을 펼쳐놓거나, 공인중개사 서적을 쌓아 놓은 성인들 말이에요.
아참, 그리고 총무 아저씨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모든 입출입이 무인 키오스크로 대체됐더라구요. 잠깐 외출을 하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꼭 전화번호나 QR code로 로그인을 해야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저는 주변을 둘러보며 슬쩍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어요.

다행히 다들 각자 공부에 몰두하고 있어서,누가 뭘 하든 관심 두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고 조용했죠. 하지만 제 집중력은 딱 20분이 한계. 허리가 뻐근하다는 핑계를 삼아 라운지 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라운지라는 공간도, 완전 신세계더라고요. 과자와 사탕이 종류별로 놓여 있고, 티백은 물론 커피머신까지 구비되어 있었어요. 왠만한 회사 탕비실보다 좋더라고요.

‘이 정도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냉장고에는 도시락을 보관해 놓는 칸도 있었고, 어떤 분은 조용히 배달 음식을 받아와 라운지 한켠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학창시절 독서실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친구들이랑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한참을 스터디카페라는 최신문물에 놀라다가, 어느새 추억 여행까지 했달까요.


화창한 봄날, 주말까지 일을 해야되서 사실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었거든요.

하지만 스터디 카페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니, 짜증이라는 감정이 호기심으로 바뀌더라고요. 처음엔 낯설고 어색해 어버버 했지만, 조금씩 적응하니 생각보다 좋았어요. 집중도 잘 되어 덕분에 일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고요. 라운지 간식을 하나씩 맛보며 기분전환도 했던 건 덤이였어요.

그래서 제 글의 결론은요— 저처럼 40대 아줌마라도 겁내지 마시고, 한 번쯤 용기 내서 시도해보시라는 겁니다. 생각보다 꽤 재밌고, 꽤 괜찮을지도 몰라요. 한번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쉽더라고요. 오늘도 부산 출장을 왔다가, 남는 시간동안 스터디카페에서 알찬 시간을 보냈네요. 익숙해지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지난번 갔던 곳이랑 뭐가 다를까?’ 하고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자녀분들께도 당당히 말씀해보세요.

"엄마, 스카 갔다왔다. 뭐 별거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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