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은 어디에나 있더라고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떠오르나요?"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이나 일상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든 창작자분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에요.
돼지책, 우리 아빠라는 세계적인 동화를 집필한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어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든 떠오릅니다. 중요한 건 주위의 모든 것을 최대한 주의 깊게 보는 것이죠."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그의 책을 읽고 자란 아이는,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중간에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감명 깊게 보고 왔답니다. 그의 그림은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고, 재치 있으며, 유쾌했어요. 스토리도 좋았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아이들만을 위한 장치들이, 어른인 저마저도 웃음 짓게 했죠. 50년 가까이 창작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비법이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그런 그는 무언의 강조를 하더라고요. 자신의 그림과 글은 ‘보통의 일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말이에요.
그의 책에는 어렸을 적 형에게 느낀 부러움의 감정도, 일찍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집 앞 해변을 산책하면서 보았던 풍경과 강아지와의 일상도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고요. 작가님의 그림과, 살던 곳의 해변 풍경 사진을 보며 저는 한참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만약 저곳에 살고, 매일 해변을 산책했다면,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과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요'였죠. 그는 분명 제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다른 필터를 끼고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중요한 건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아마도 그걸 바라보는 시선과 관심 아닐까 싶네요.
같은 풍경을 보고도 누구는 그냥 지나치고, 누구는 거기서 이야기를 떠올려요. 앤서니 브라운은 그 차이를 ‘주의 깊게 보는 것’이라고 말했죠. 그것이 그에게는 크리에이터로서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덧붙이며 말에요. 영감과 아이디어는 사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해요. 다만 그 누군가에게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흔한 돌멩이일 뿐이에요.
앤서니 브라운 전시를 갔다 온 후, 저는 '주변에서 특별한 것 찾기'를 시도해 봤어요.
매일 오후, 답답한 사무실을 나서 산책을 떠나요. 늘 보는 풍경이라 별다른 점을 찾기는 힘들었죠. 하지만 저에게 스스로 작은 미션을 부여해 봤어요
'산책길에서 만난 10가지 식물을 발견하고 기록해 보자.'
제가 산책길에서 떠오를만한 식물이라고는 플라타너스 하나뿐이었요. 근처 중학교 앞 산책길을 가득 채우고 있거든요.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라고요. 은행나무, 전나무, 벚나무, 장미, 제라늄, 은행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칠엽수, 금계화, 돈나무, 철쭉나무, 회양목 등등이요. 흙속에 핀 잡초와 이름 모를 꽃은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이 보일지 몰랐어요. 전날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길이,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 순간이에요.
그건 비단 나무뿐만이 아니었어요. 조금 더 의식하고 주변을 바라보니, 스쳐 지나갔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고, 어른들은 뒷걸음질하며 손뼉 치고, 옆의 아파트에는 재활용 수거차가 와있었어요. 회사 목걸이를 차고 짧은 점심시간 동안 산책 나온 사람도 보였고, 한 달 전보다 훨씬 시원해진 옷차림도 눈에 띄었어요. 어제도 걸던 산책길인데, 전혀 다른 풍경처 느껴졌어요.
게다가 나무를 관찰하며 이런저런 글감이 조금씩 떠오르더라고요.
3월만 하더라도 앙상한 가지만 있었는데, 이제는 무성한 나뭇잎으로 제법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더라고요. 아주 작고 조그마한 새싹은, 어느새 동그랗고 때론 세모나거나 뾰족뾰족한 이파리로 자라났어요. 나뭇잎을 잘 관찰하다 보니, 이 잎이라는 녀석은 나무줄기에 옹기종기 꼭 붙어 있는 어린아이들 같아 보이기도 했고요.
어쩌면 창작의 시작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관찰에서부터 오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이야기를 찾아내요. 앤서니 브라운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든 떠오른다”라고 말했죠.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시선만 바꾸면, 우리가 지나친 일상에서도 여러 이야기의 씨앗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주의 깊게’ 주변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당신이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