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에는 나이가 없다
"이 길이 정말 제 길이 맞을까요?"
같은 전공, 같은 회사라는 공통점이 있는 후배 A가 어느 날 저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물론 호기심 섞인 의문문이 아닌, 회의감에 가득찬 한탄에 가까운 말투로요. 최근 회사에서 겪었던 일로, 현타(?)가 세게 왔대요. 괴로운 기억이라 다시 끄집어내서 말하기는 싫다고 하며, 한 마디 덧붙이더고요.
"처음엔 분명 이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시잖아요, 저 캠페인 성공시키겠다고 맨날 밤새고, 미친X처럼 여기 저기 고객들 찾아 다닌거. 그런데 요즘은... 매일 아침마다 이런 생각 해요.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A는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고요.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God의 '길'이라는 노래 가사가 계속 맴돌았어요.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A에게, 함부로 섣부른 조언을 할 수는 없었어요.
누군가는 신나게 씽씽 달려갔던 그 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진흙탕 길일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명품처럼 착 들어맞는 옷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거적때기일 수 있잖아요. 게다가 이 일을 19년째 하고 있는 저조차도,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 맞는지, 아직 잘 모르거든요.
작년 말, 저는 이 업계를 완전 떠날 결심을 했었어요. 실제로 사표를 내기도 했고요. A와 마찬가지로 괴로운 일들이 연속되었고, 이 길은 더 이상 내 길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다른 길에 대한 확실한 대안은 없었지만, 이 길을 계속 걸어가는 건 아니란 생각부터 했어요.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무모한 결정이라며 엄청 말렸죠. 비록 제 귀에는 하나도 안 들어왔지만요.
그 때의 저는, 세상으로부터 귀를 닫고, 대신 God의 '길'만 무한반복으로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걸어왔던 이 길에 대한 의문, 사람들은 왜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지에 대한 호기심. 그중에서도 가장 저를 멈칫하게 만든 노랫말은 바로 이거였어요.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그동안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빨리 달렸던 것 같아요. 회사 일에 치여,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거든요. 워라밸, 취미 이런 건 저에게 사치에 불과했죠. 그런데 어떤 사건을 겪고 회사와 일에 회의가 생기다보니, 갑자기 혼란스럽더군요. 그 와중에 God는 저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어요. 너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 거냐고. 그러게요. 저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질문에 저는 아직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어요.
사표를 냈지만, 결국 저는 다시 이 길로 돌아왔어요. 왜냐고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없던 확신이 생겨서도 아니고, 다른 길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서도 아니에요. 그냥... 한번만 더 이 길을 걸어보자 생각한거에요.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오솔길, 자갈길, 바위산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요.
A에게 솔직하게 말했어요.
"나도 잘 모르겠어. 19년을 이 일 했는데도. 그런데 한 가지는 말해줄 수 있어. 완벽하게 확신하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 다들 의심하면서, 흔들리면 걸어가고 있더라."
제 경험담도 들려 주었어요.
"때려치려던 결심을 돌리고 이 일을 다시 해보니, 다른 시선이 보이기는 하더라. 만약 내가 계속 걷지 않았더라면 몰랐던 것들을 요즘 느끼고 있어."
저는 A에게, 어떤 길을 걷던, 멈추지 말고 조금씩 계속 걸어보라고 얘기해주었어요. 머릿속으로만 상상만 하는 길과, 직접 걸어보는 길은 다르니까요. 그리고 그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기준, 방향성, 나다움이라는, 아주 뻔한 말도 덧붙이면서요. 내 길을 고민할 때 우선시해야하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종종 외부 요인에 의해 길을 선택하잖아요. 이렇게 선택한 길에서, 어느 순간 땅을 치며 후회하기도 하고요.
부디 A가 흔들리고 주저앉고 싶더라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았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그날의 커피챗을 이어나갔어요.
오늘은 그 때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God의 '길' 노래 가사로 커피챗의 마무리를 해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왜 그 길을 걸어가고 계시나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새로운 길이 있으신가요?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