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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커피챗 - 나랑 딱 맞는 상사 어디 없나?

인자하고 능력있고 멋진 상사 구해

by 수풀림

"아, 진짜...전무님 때문에 짜증나 죽겠어."

옆 부서 팀장 A는, 저를 보자마자 그동안 담아 두었던 상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어요.

"자기는 직접 이 일 안 하니까 모르겠지. 얼마나 힘든건지. 말로만 시키면 다야? 제대로 봐주지도 않을 거면서 뭣하러 그렇게 시키는거야?"

그에 질세라 팀장 B도 이어서 얘기합니다.

"차라리 너네 전무님이 낫다. 우리 상무님은 보고서 한 글자 한 글자씩 씹고 뜯고 맛보잖아. 마이크로매니지 끝판왕이랑 같이 일하면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자간이랑 폰트 틀리면, 그 날은 집에 못 가는거야."

마치 누가누가 더 최악의 상사와 일하나 내기하듯, 그 날의 뒷담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어요.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요. 점심 시간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몇 시간이고 같은 주제로 얘기했을지도 몰라요.


우리 직장인들은 왜 상사에게 늘 불만을 느끼는걸까요?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회사에서 상사의 존재가 그만큼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 거에요. 우리 팀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이끄는 사람. 나를 평가하고 내 연봉 인상률을 결정하는 사람. 나랑 안 맞아도, 꼴보기 싫어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계속 봐야되는 사람.

그리고 상사의 역할 중 하나는 업무 지시도 있잖아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세트에 더해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잔소리를 아끼지 않고 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가진 상사를 만나더라도 업무로 엮여 있는 사이면, 같이 일을 하면서 사이가 계속 좋을 수는 없더라고요.

우리는 상사의 칭찬하는 말 한 마디에 기분이 날아갈듯 좋았다가도,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면 금세 감정이 나락으로 떨어지곤 해요. 상사의 말투나 표정으로 그 날의 팀 분위기가 좌지우지 되고요. 이렇듯 직장에서 상사라는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직장인들의 3대 행운 중 하나가, 바로 '상사 복'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실제로 상사를 잘 만나면, 직장 생활이 술술 풀리는 경우도 있고요. 나는 상사 잘못 만나 승진에서 물 먹고 있는데, 옆 부서 김 차장은 상사 복 터져 승승장구 하는 걸 보면 참 배가 아프죠.

하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 회사는 내가 고를 수 있어도 상사를 고르기는 어려워요. 면접 때 얼굴 처음 본 게 전부에요. 이건 마치 우리가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상사를 잘 만난 경우 '복', '운'이라는 단어를 붙이나봐요.

다만, 부모 자식과의 관계와는 조금 다른 건, 입사한 그 순간만큼은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엄청 노력한다는 사실이에요. 아침에 출근할 때 부모님한테는 신경질을 내더라도, 직장에 와서 상사를 보면서는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하잖아요.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기에,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기에 일도 열심히 하고 상사의 기분을 맞추려고 애를 써요.


하지만 마치 배우자와의 관계처럼,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자상한 배려라고 느껴지는 상사의 부드러운 말투가, 어느 순간 거슬리기 시작해요.

'뭐야, 맨날 저렇게 맥아리 없이 얘기하니까, 사장님한테 기획안 까이는거잖아.'

그의 꼼꼼한 피드백은 '꼰대의 라떼' 이야기처럼 느껴지죠.

'어휴, 지긋지긋하다, 그냥 제발 넘어가면 안되나. 일장연설 들을 시간에, 자료 고치면 될 것 같은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상사의 단점만 크게 보여요. 작은 말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왠지 그가 능력 없어 보이고, 아무튼 짜증이 막 치솟아요.

이 기간이 길어지고 온통 신경이 여기에 가 있으면, 우리는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배우자와도 정말 안 맞으면 이혼을 고려하잖아요. 상사와 케미가 최악인 경우, 퇴사와 이직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돼요. 회사를 그만두는 수십가지 이유 중, '상사'가 원인인 경우가 제 뇌피셜로 50%가 넘더라고요.


그러나 매 달의 카드값과 은행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우리는,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죠.

상사가 싫긴 하지만, 이렇게 그만두는 게 맞는가에 대해서요. 그리고 어딜 가나 마주칠 수도 있는, 또 다른 빌런 상사의 존재가 두렵기도 하고요.

어쩌면 상사라는 존재는 나를 시험하는 ‘관계의 거울’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거울 속에는 상사의 단점만큼이나, 내가 그에게 얼마나 기대하고 실망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비치죠. 우리는 상사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상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오롯이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어차피 이 세상에 나랑 완벽하게 맞는 상사는 없을테니, 회사를 다니는 동안 만이라도 그와 잘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의 단점은 눈 흐리게 뜨고 좀 덜 보고, 그가 가진 아주 작은 좋은 점들을 찾아보려고요. 생각보다 많이 나올지도 몰라요. 휴가쓴다고 할 때 눈치 안 주기, 가끔씩 커피 사주기, 아픈 팀원 대신해서 야근하기 등등.

상사에게 요청할 사항들을 1:1 면담 시간에 얘기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대신, 주의할 점은 있죠. 그가 싫어할만한 단어 쓰지 않기, 내가 말하려는 목적 분명히 하고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등등.


상사도 결국 '사람' 이더라고요.

누군가의 상사가 되어 보니 알겠더군요. 왜 당시의 부장님이 나한테 그렇게 대했는지. 사장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는지. 팀의 방향성을 못 잡고 헤맸는지 말이에요.

이 세상에는 '완벽한 상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연차가 차니 점점 깨닫게 됩니다. 어떤 상사를 만나던 서로 잘 맞춰가는 호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상사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한 번쯤은 상사의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다이어리에 써보시라 권해 드리고 싶어요. 쓰다 보면 그의 단점과, 내가 화나는 지저과, 앞으로 어떻게 내가 대응할지가 조금은 보이거든요.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 풀린다면요? 어쩔 수 없죠.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수 밖에요. 세상에 정해진 길은 하나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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