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사진 공모전 같은 곳에 나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찍은 사진이 엄청나게 커다란 액자에 담겨 집에 도착한 적도 있다. 그래서 우리 집 벽에는 아빠가 우리와 함께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 아빠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빠는 사진관을 열고 싶어 했다. 그 사실을 어린 나에게 몰래 말하곤 했는데, 그때의 나는 말 그대로 너무 어려서 별 감흥이 없었다. 만약 지금의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면 신이 나서 함께 사진관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모를 일이다. 이미 아빠의 바람에 제대로 리액션을 해주지 못한 채 긴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럼에도 아빠는 내게 깜짝 선물을 남겨놓고 갔다.
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 후, 신혼집에 고모가 찾아온 적이 있다. '이제 너의 집이 생겼으니 네가 보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챙겨 온 물건들과 함께 말이다. 고모가 건넨 종이가방엔 아빠가 참여했던 연극부 활동집, 문집 같은 것들과 아빠가 일하면서 녹음했던 취재파일 등이 섞여 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젊은 모습이 담긴 사원증 뒤에는 작은 사진이 두 장 있었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흰 프레임 속 반투명한 필름엔 분명 어떤 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절 아빠가 마주했던 어느 가을날의 한 순간.
나는 아빠의 모든 가을을 함께하지 못했고, 아빠 역시 나의 모든 가을을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이 작은 필름을 꺼내보곤 한다. 어느 가을날 그 풍경 속에 서있었을 아빠를 떠올리면서, 마치 내가 그 옆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