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서점(自主書店)을 꿈꾸며

자주(自主)스럽게, 혹은 자작(自作)스럽게.

by 알렉



책을 좋아하는 북클럽이 서점을 연다면, 도대체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이 질문을 붙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책을 진열하고, 굿즈를 팔고, 예쁜 조명 아래 따뜻한 차 한잔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기존 독립서점들과 무엇이 다를까? 문득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츠타야 다이칸야마 T-Site와 대만의 誠品書店을 떠올렸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멈추지 않도록, 그 시간이 곧 그곳에 머무는 이유가 되도록 만든 곳이었다.

책장을 사이에 두고 음악이 흐르고, 커피향이 퍼지며, 누군가는 옆자리 사람과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아, 저런 곳이라면 나도 매일 가고 싶겠다.

그럼 ‘자주(自主)’서점은 무엇을 팔아야 할까?

표준대국어사전을 들춰보니 자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스로 처리함', 또 하나는 '스스로 지음'.

남의 것을 따라 하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

결국은 외형보다 내형, 그러니까 철학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이 요즘 세상엔 뭐든 다 카피가 가능하다.

예쁜 서가, 감성 조명, 트렌디한 음악 리스트까지.

AI에 사진 한 장 던지면 비슷한 느낌으로 재현해주지 않나.

그렇기에 '비슷함'은 아무런 무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만의 다름’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 다름이 바로, 내형의 차별화다.


사례 1. 일본 츠타야 다이칸야마 T-Site – 머무는 서점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

숲 속의 도서관 같은 그곳에 들어서면 시간 개념이 흐려진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가구를 둘러보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츠타야는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시간을 파는 곳이다.

디자이너가 참여한 공간은 탐색하고 머무르고 싶게 만들어진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는 것'보다 '머무는 것'에 더 몰입한다.


사례 2. 대만 誠品書店 – 밤을 밝히는 서점

타이베이의 誠品敦南店은 세상에 24시간 서점이라는 걸 처음 알려줬다.

밤에도 켜져 있는 조명, 새벽에 들려오는 책장 넘기는 소리.

이 서점은 단지 영업시간을 늘린 게 아니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삶의 리듬 속으로 끌어들였다.

전시와 공연, 작가와의 대화, 커뮤니티 활동까지.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게 문화생활이 된다.

나는 그런 걸 좋아한다.

책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에 초대받은 느낌.


사례 3. 도쿄 Book and Bed – 잠들기 전의 페이지

Book and Bed는 조금 낯설다.

서점인데 침대가 있다.

침대인데 책이 있다.

숙면보다는 독서를 위한 잠자리라니, 처음엔 웃겼지만 자꾸 생각이 난다.

저기서 책을 읽다 잠들면 어떤 꿈을 꿀까? 그 공간 자체가 컨셉이고, 그 경험 자체가 판매 상품이다.

단순한 콘셉트 이상의 설득력이 있다.

북클럽을 숙박형 프로그램으로 확장한다면 어쩌면 우리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세 곳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팔고 있는 것은 책이지만, 진짜로 전달하는 건 '경험'이라는 점.

고객이 공간에 머물고, 이야기를 만들고, 스스로 그 브랜드의 일부가 되는 경험.

브랜드 철학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것이 느껴진다.


Tommy Bahama라는 브랜드도 떠올랐다.

의류 브랜드였지만, 이제는 리조트, 레스토랑, 바까지 확장됐다.

‘해변에서의 여유’를 팔고 싶은 그들의 철학이 고객의 동선 전체에 녹아든 것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다는 단순한 행위에서 확장된, ‘자기 시간을 갖는 법’을 제안하는 서점.

자주서점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만의 큐레이션과 원칙.

둘째, 고객이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 구성.

셋째, 고객이 함께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는 장치들.

우리가 남긴 포스트잇 하나, 회원이 써준 코멘트 하나가 다음 운영 방향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주서점의 힘 아닐까.


책은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하지만, 그 선반 너머에 놓여야 할 것은 결국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자주(自主)스럽게, 또 자작(自作)스럽게.


김포 자주서점

https://www.instagram.com/mableco_books?igsh=OHB6dWxoZDF0aHV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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