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면 망한다? 로컬서점의 아이러니

심야책방의 가을맞이, 서점의 변신을 꿈꾸다

by 알렉

심야의 동네 책방 창밖으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빗물에 젖은 도로와 책방 앞에 놓인 자전거들이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반짝이고, 서점 안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빛 조명이 빗물에 일렁여 따뜻하게 번진다.

고요한 빗소리만 가게를 감싸는 이 밤, 나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비가 그치고 나면 거리엔 한층 선명한 가을 풍경이 펼쳐지겠지.

다가오는 계절을 맞아 서점도 새로운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나는 작년 겨울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준 난로를 다시 꺼내어 먼지를 털고 작동을 확인했다.

책장을 새로 정리하는 일 못지않게,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늑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책방지기의 중요한 계절 준비다.


얼마 전 출판계 지인과의 모임에서 누군가 농담처럼 “서점은 책을 팔면 망한다”는 말을 했다.

언뜻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요즘 서점들의 현실을 잘 짚은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 대형 서점 임원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오프라인 매장의 전체 매출에서 도서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0~4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50% 이상은 문구류나 기념품 같은 잡화 판매가 채우고 있었다.

간판에 ‘문고(文庫)’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도 정작 책 판매만으로는 가게를 꾸려가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현실인 셈이다.

대형 체인조차 이런 형편이니, 작은 동네 책방은 과연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예전보다 책을 덜 읽게 되었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독서에 대한 관심은 형태를 바꾸어 지속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열린 서울 국제도서전에는 5일 동안 약 15만 명의 인파가 몰리며 전년 대비 관람객이 15% 이상 늘어나는 기록을 세웠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책과 이야기를 사랑한다는 증거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소비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의 보급으로 이제 언제든 원하는 책을 주문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예전처럼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한아름 사 오는 일은 줄어들었다.

대신 독자들은 책을 발견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즐거운 경험으로 여기게 되었다.

책을 고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책을 읽는 공간과 분위기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책을 사는 시대가 아니라 책을 경험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대형 서점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형태의 책방과 독서 공간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책을 판매하는 방식이 달라지자 서점의 모습도 덩달아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의 ‘분키츠’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서점이다.

대신 푹신한 의자와 무제한 제공되는 음료가 마련된 공간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어, 책 한 권을 ‘구매’하기 전에 충분히 ‘경험’할 시간을 선사한다.

오사카의 ‘세이와도 책방’은 책의 겉모습을 특별한 북커버로 예술 작품처럼 꾸며주는 아이디어로 유명해졌다.

책을 한층 매력적인 오브제로 만들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서점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 사례다.


스크린샷 2025-09-24 201047.png 분키츠서점 책읽기에 특화된 공간


영국 런던의 ‘골즈보로 북스’는 인기 소설의 초판 서명본처럼 희귀한 도서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흔히 볼 수 없는 한정판 책을 갖추어 책 수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서점은, 책에 희소가치를 담아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서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책이라는 상품을 진열해 두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에게 책을 매개로 한 특별한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샷 2025-09-24 201241.png 골든보로 북스 전경


사실 책을 접하고 향유하는 방식이 변화해온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무디스 렌딩 라이브러리’와 같은 유료 대여 도서관이 성행했고,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도 ‘세책사(貰冊肆)’라 불리던 민간 책 대여점이 있었다.

책이 귀하고 값비쌌던 시절에는 사람(们直接买)이 책을 소유하기보다,

이렇게 돈을 내고 일정 기간 책을 빌려 읽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오늘날 공공 도서관에서 무료로 책을 빌려 보는 일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극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만이 장서를 소유했지만,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비로소 일반인이 책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에 따라 19세기에는 현대적 의미의 서점이 도시 곳곳에 등장했고,

20세기 후반에는 인터넷 서점과 전자책까지 출현했다.

이처럼 책과 독자가 만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꾸준히 바뀌어 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도 그 흐름의 일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서점, 특히 우리 같은 로컬서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사람들이 굳이 서점을 찾는 이유가 달라진 만큼, 서점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독자들이 자유롭게 책을 탐색하고 읽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동네책방도 이제 책 한 권 더 파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독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서점이라도 지역 주민들이 편하게 들러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늑한 독서 모임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점지기가 신중히 고른 책들을 진열하고 소개함으로써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운치 있는 북카페를 겸해 향긋한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독서를 제공하거나,

작가 초청 북토크나 글쓰기 워크숍 같은 문화 이벤트를 여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점을 찾은 사람이 책과 만나는 순간을 얼마나 특별하게 기억하게 만드느냐이다.

책을 통해 얻는 감동과 깨달음을 배가시켜 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책을 사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점을 찾아줄 것이다.

빗소리를 배경 삼아 조용히 문을 닫을 채비를 하며,

나는 내일 책방에서 펼쳐질 새로운 풍경을 그려본다.

밤 사이 비가 그치고 나면 상쾌한 공기에 책방 앞 낙엽들도 반짝이겠지.

그 맑은 아침, 나는 새로 들여온 책들을 정갈히 진열하고 첫 손님을 맞이할 생각이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만큼 따뜻한 차도 미리 끓여 둘 참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책방은 작은 변신을 거듭하겠지만,

언제나 동네 사람들과 책이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지키는 일만큼은 잊지 않을 것이다.


책을 둘러싼 풍경은 바뀌어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와 공감은 여전히 우리의 이 가을 밤처럼 깊고 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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