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나는 책방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불은 끄지 않았다: 독립서점의 역설—심야책방의 지속가능성.

by 알렉

초가을, 나는 책방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불은 끄지 않았다.

독립서점의 역설—심야책방·독서모임·북토크로 찾은 지속가능성

정확히 말하면—낮에만. 밤이 오면 우리는 여전히 불을 켜고, 문을 열고, 책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문을 닫는 상상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여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다.


지난 한 주, 우리 심야책방은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내가 자리에 없었지만, 호스트들이 대신 문을 열어주었고, 그 사이에도 몇몇 손님과 모임원들은 여느 때처럼 조용히 들어와 의자를 당겨 앉았습니다.

동네 책방은 누군가의 하루를 비추는 가로등 같아서, 잠시 멈춰 서도 불은 꺼뜨릴 수가 없더군요.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오래 책방을 지켜온 선배 사장님과 나눴던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책방은 대놓고 책을 파는 업종인데, 책만 팔아서는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분명한 진실.

그래서 우리는 늘 책을 중심에 놓되, 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책을 통해 생겨나는 부산물—모임, 대화, 관계, 기억—을 품고, 그것들을 더 잘 팔기 위해 ‘업의 정의’를 매일같이 다시 씁니다.

천성적으로 장사꾼인 동시에, 책이라는 느린 것을 다루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요즘 무인 책방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은 돈과 꿈을 향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다만 5년, 10년을 버틴 이들에게는 그 뉴스가 씁쓸하게 스치기도 합니다.

문 여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운영은—사람을 맞이하고, 감정을 다독이고, 수지를 맞추고, 매일의 균형을 잡는 일—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책방은 하루하루 몸으로 가르칩니다.

심야책방과 독서클럽이 1주년을 넘겼습니다.

자유독서에 지정독서를 더했고, 우리 공간을 벗어나 다른 장소에서 모임을 열어 공간의 제약을 조금씩 넘어봤습니다.

읽는 이들의 방이 어느새 쓰는 이들의 무대가 되도록 북토크를 준비하면서, 프로그램의 결이 조금씩 풍성해졌다는 것도 느낍니다.

게다가 책 읽기 좋은 초가을—바람은 선선하고, 페이지는 잘 넘어가는—날씨까지 우리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주 모임은 역대 최저의 참석률을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 한쪽이 푹 꺼졌습니다.

내가 초심을 잃었나? 무언가를 너무 욕심냈나? 혹은 공급자 위주의 콘텐츠만 쏟아냈던 건 아닐까.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책방이란, 어쩌면 사춘기 같은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확신으로 반짝이고, 다음 날은 이유 없이 흔들리는.

질풍노도의 파도가 365일 이어져도, 우리는 다시 샵(#) 표시처럼 제자리를 잡고 줄을 맞춥니다.

불을 켜고, 의자를 정리하고, 책을 한 권 더 얹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자리에 앉은 한 사람의 숨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적어도 그 한 사람 앞에서는, 책방의 정의가 다시 분명해집니다. 오늘도 우리는 책을 가운데 두고, 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팔아봅니다.

관계와 기분, 문장과 용기, 그리고 아주 작은 위로 한 줌.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아직은 믿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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