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성장한다는 말 대신, 문장이 쌓인다는 말

김포 심야서점이 쌓는 건 문장이다

by 알렉

다음 주를 준비하며,

오늘도 심야 서점의 불을 조금 더 오래 켜두었다.

김포에서 작은 심야서점과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정말 성장할 수 있을까?

애당초 “서점이 성장한다”는 문장이 성립은 할까?

대단한 호스트도, 대단한 상권도 아닌 비서울권에서 버틴다는 건 종종 용기보다 인내가 먼저 바닥나는 일이다.

그래도 문을 닫지 않는 이유는 밤마다 한 사람씩 남기고 가는 문장들 때문이다.

그 문장들이 내일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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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이블랙코티지는 여러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사람”부터 키운다.

호스트 한 명의 온기로 굴러가는 모임은 오래가기 어렵다.

그래서 진행·기록·환대 역할을 나누고, 잠재 호스트를 발굴해 동행한다.

정기 멤버들에게는 “참여의 설계”를 다시 짠다.

출석을 확인하는 대신, 각자의 한 문장을 다음 모임의 첫 질문으로 연결한다.

작지만 분명한 루틴이 모임의 뼈대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동안은 ‘자유독서’를 표방했다.

누구든, 어떤 책이든, 조용히 두어 시간 읽고 삼십 분 나누는 방식.

이 형식은 장벽이 낮고 온도가 따뜻하지만, 사유의 깊이가 분산되는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방향을 단단히 잡으려 한다.

이전처럼 거창한 선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실험부터 시작한다.

사업 용어로는 MVP라 부를 수 있지만, 우리에겐 ‘시범판 독서’가 더 정확하다.

핵심은 지정독서가 곧 북토크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

한 달 동안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질문을 숙성시키는 프렙(prep) 스프린트를 돌린 뒤, 그 에너지를 저자와의 만남으로 수렴시키려 한다.

가설은 간단하다. “지정독서는 자유독서보다 토론의 밀도를 높이고, 북토크의 품질과 재방문율을 끌어올리는가?” 이를 검증하기 위해 회차와 정원을 작게 묶고, 모임 전 핵심 발췌 10쪽과 질문 5개를 공유한다.

진행 흐름은 오프닝 → 핵심구절 낭독 → 해석의 분기(Agree/Disagree/Why) → 개인 적용 → 한 문장 기록. 이게 우리의 베타 플로우다.

여기서 축적된 질문과 해석의 갈래가 곧 다음 단계, 북토크의 연료가 된다.


달 1회 북토크는 유명세를 소비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정독서에서 만들어진 질문을 저자의 호흡과 교차 편집하는 자리다. 형식도 그에 맞춘다.

저자 20–30분 키노트 → 참가자 ‘큐카드 20문장’ 릴레이 낭독 → 저자 즉답(Clarify→Deepen→Extend) → 마지막 10분 ‘다음 달 나의 실행 한 줄’로 마감.


콘텐츠의 끝을 행동으로 닫아야 독서가 삶의 방법으로 이어진다.

정리하면, 지정독서는 북토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프렙 단계, 북토크는 그 프렙의 결실을 맺는 공동 편집 라이브다.

이렇게 월간 리듬을 고도화하면서, 우리는 질문의 깊이와 참여의 지속성을 함께 키운다.

숫자도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는 밤의 풍경을 사랑하지만, 장부의 현실도 함께 본다.

참여율, 재방문율, 준비 독서율(사전 발췌 열람 비율), 한 회당 체류시간, 모임 후 72시간 내 남겨진 ‘후속 문장’의 수. 이 다섯 개를 우리의 핵심 지표로 삼는다.

지역 기반의 성장은 결국 관계의 누적과 리듬의 지속에서 나온다.

리듬을 데이터로 확인하고, 데이터로 다시 리듬을 다듬는다.

사실 가장 두려운 건, “비서울권이라서 안 된다”는 익숙한 변명 뒤에 숨는 나 자신이다.

그래서 오늘의 다짐은 간단하다.

상권을 탓하기 전에 관계를 설계하고, 유명세를 부러워하기 전에 루틴을 단단히 만들자.

작은 야간 조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김포의 밤에도 독서가 번지는 순간이 온다.

한 사람의 한 문장이 다음 사람의 등불이 되는 방식으로.

문을 닫기 전, 다음 달 지정도서의 첫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우리는 하나의 문장을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걸을 수 있을까.”

어느 날은 자유독서로, 어느 날은 지정독서로, 또 어느 날은 저자와 함께.

우리가 걸을 방향은 달라져도, 목적지는 같다.

더 잘 듣고, 더 잘 묻고, 더 잘 살아보기.

마지막으로, 우리 식의 ‘성장’ 정의를 벽에 붙여둔다.

성장: 팔린 권수의 그래프가 아니라, 남겨진 문장의 온도.

성장: 더 큰 매장이 아니라, 더 긴 체류시간.

성장: 유명인의 방문 사진이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의 발걸음.


오늘 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포에서 작은 심야서점과 독서모임으로 살아낸다는 건, 거대한 파도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물결을 맞는 일이다.

현관 앞 돗자리처럼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자리를 펴두는 일.

우리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부족한 것을 천천히 채우면서. 내일도 불을 켠다.

시범판 지정독서의 첫 회를 시작하고, 북토크를 위한 큐카드 20문장을 고르고, 새 호스트의 첫 인사를 연습한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오늘의 한 문장을 기록한다.
“야간의 서점은 작지만,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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