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km를 달려온 수요일, 우리는 한 문장을 붙였다

읽는 건 혼자, 버티는 건 함께

by 알렉

수요일 독서 모임이 있는 날,

나는 호스트가 아닌데도 가방을 질끈 들고 마이블랙코티지로 향했다.

1박 2일짜리 부산 출장을 막 마치고 올라오는 길, 차로 김포을 향해 오래 달렸다.

고속도로 표지판이 바뀔 때마다 마음속 거리도 조금씩 줄었다.

부산에서 김포까지 487km—숫자에 마음을 살짝 더 보태면 그만큼의 그리움이었다.

집에 들를 틈도 없이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원년 멤버가 온대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정확히 1년 전, 이곳의 문을 가장 먼저 밀고 들어왔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때를 ‘첫 정’이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제일 먼저 의자를 당겨 앉아준 고마움, 시작을 가능하게 해준 그 순간의 온기.

그게 얼마나 오래가는지, 나는 이번에 또 배웠다.


문을 열자 특유의 종소리가 작은 파동처럼 퍼졌다.

테이블 위엔 각자의 책이 펼쳐져 있었고, 벽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모인 포스트잇이 빽빽했다.

누군가의 손글씨, 누군가의 쉼표, 누군가의 하루를 간신히 건져 올린 문장들.

우리는 이 모임의 슬로건을 “혼자 읽지만, 함께 느끼는 순간”이라고 정했다.

오늘도 그 약속 그대로, 두 시간 동안 각자의 책을 읽는다.

고요는 도서관의 침묵과 다르다.


컵에 부딪히는 얼음 소리, 종이를 넘기는 바스락, 메모를 적는 펜촉의 움직임이 작은 파도로 겹겹이 쌓인다. 누군가의 호흡이 조금 빨라지는가 싶으면, 잠시 후 또 다른 누군가의 어깨가 살짝 가라앉는다.

말은 없지만, 감정은 방 안을 천천히 순환한다.


오늘은 특별했다.

세 달 동안 뜸했던 멤버가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고, 1년 전의 첫 멤버도 먼 길을 돌아왔다.

487km의 내비게이션 숫자보다 마음의 피곤이 더 길었을 그 길을, 그는 웃으며 지워냈다.

2박 3일의 일정을 충분히 누릴 수도 있었지만, 그 시간의 일부를 잘라 이곳에 붙여두기 위해 핸들을 잡았다는 사실.

그런 선택 앞에서 나는 괜스레 등을 곧추세웠다.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돌아올 이유’가 된다는 사실이 어깨를 따뜻하게 눌렀다.

두 시간이 지나고, 시계가 소리 없이 다음 칸으로 넘어가자 우리는 책을 덮었다.

각자 건져 올린 문장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는다.

짧은 문장 하나가 오늘의 체온을 기록한다.


누군가는 “나는 아직 충분히 단단하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버티고 있다”라고 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문장이 나를 살린다”라고 적었다.

종이 한 장, 풀 한 번, 핀 한 개.

그 단순함이 오히려 마음의 무게를 정확히 붙잡는다.

포스트잇 게시판은 점점 더 다채로운 표정을 갖는다.

들떠 있던 노랑, 차분한 초록, 생각이 길어진 베이지, 그리고 때때로 불쑥 나타나는 하얀 여백들.

그 사이를 지나가다 보면, 문장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때가 있다.


모임이 끝난 뒤,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모임이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를 두고 싶었다.

이유를 묻지 않고, 결정을 비판하지 않고, 그냥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책은 늘 내 편이었다.

내가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책은 쪽수를 맞추듯 반대편에서 조용히 무게를 얹어 균형을 잡아주었다.

일방향의 대상 같지만, 사실은 가장 잘 들어주는 존재.

나를 설득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존재.

누군가의 문장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를 이해한다.

그 사실을 오늘 다시 확인했다.


원년 멤버와 마주 앉아 지난 1년을 훑었다.

우리에게 독서는 ‘지식의 획득’보다 ‘체온의 회복’에 가까웠다.

회사의 평가 시즌, 예고 없는 발령, 타지에서의 낯선 밤, 관계에서 생기는 작은 균열들.

그런 순간마다 우리는 ‘수요일’을 떠올렸다.

두 시간의 침묵과 삼십 분의 나눔, 그리고 한 장의 포스트잇.

이 단순한 구조가 마음의 거처를 만들어주었다.

세상 대부분의 공간이 결과를 요구할 때, 여기는 과정을 허락했다.

“오늘은 이것밖에 못 읽었어요.” “왜 좋은지 설명은 못 하겠는데, 이 문장이 자꾸 돌아봐요.”

이런 말들이 허용되는 장소.

기준보다 호흡을, 속도보다 체류를, 화려함보다 지속을 택한 자리.

생각해보면, 우리는 책을 읽으러 오는 게 아니라 ‘함께 느끼러’ 온다.

삶에서 감정은 종종 미끄러진다.

바쁘다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끄러진 감정은 뭉개져서 어디에선가 갑자기 폭발하곤 한다.

독서 모임의 두 시간은 그 감정을 조용히 다시 데려오는 시간이다.

문장을 매개로 감정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괜찮아, 너도 자리 있어.”

어떤 날은 문장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버티고, 또 어떤 날은 문장 하나가 우리를 끝까지 붙잡아 준다.

결국 그날의 구원은 페이지 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좋은 독서란,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느끼는’ 것이다.

나는 가끔 벽을 바라보며 상상한다.

포스트잇 하나하나에 발자국이 있다고.

누군가는 그 발자국을 따라 이곳에 도착했다가, 다시 자기가 떠나야 할 길로 걸어간다.

어떤 발자국은 가볍고, 어떤 발자국은 깊다.


비가 왔던 날의 흔적, 눈이 내렸던 밤의 눌림, 한여름의 땀.

그 모든 것이 겹쳐져 길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중인지도 모른다.

혼자 걷지만, 함께 느끼는 길. 누군가 먼저 지나간 자리를, 누군가 나중에 지나가며 위안을 얻는 길.

오늘의 문장도 벽에 붙였다.

“보여주기만 하니, 이보다 좋은 내 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책에 대한 말이지만, 사실은 사람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사람은 보여주는 순간, 스스로를 내어준다.

우리는 그 내어준 마음 앞에서 쉽게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금 더 앉아 있기로, 한 문장 더 기다리기로, 한 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다.

누군가의 삶이 한 페이지의 여백처럼 조용히 펼쳐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

그 기다림이 결국 관계를 낳는다.


밤이 깊어졌다.

창밖으로 늦은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원년 멤버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다음 주에도 올게요.” 그 말은 약속이자 위로였다.

나는 문을 닫으며 마음속으로 거리를 다시 계산했다.

핸들 위로 지나간 487km, 계기판의 숫자와는 다른, 마음의 거리까지.


두려움에서 안심까지,

고독에서 연결까지,

의심에서 신뢰까지.


숫자로 세기 어려운 거리였다.

우리는 그 거리를 함께 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또 생각했다.

독서가 내게 해준 가장 큰 선물은 ‘내 편의 언어’를 갖게 해준 일이다.

세상의 언어에 지칠 때, 책은 나만의 언어를 조용히 되돌려준다.

그리고 그 언어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그게 바로 마이블랙코티지의 의미다.

우리는 여전히 혼자 읽겠지만, 앞으로도 함께 느낄 것이다.

누군가의 문장이 또 다른 누군가의 밤을 건너게 해줄 때까지.

벽은 더 무거워질 것이고, 동시에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 위에 쌓인 수많은 손글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기, 당신의 자리도 있습니다.”


다음 수요일에도 문은 열린다.

우리는 같은 의자에 앉고, 다른 책을 펼치고, 비슷한 침묵을 나눈다.

누군가는 먼 길을 차로 달려올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잠시 쉬어갈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곳은 출석을 확인하는 교실이 아니라, 마음을 확인하는 거실이니까.

한 사람이 한 문장을 붙이고 돌아가면, 그만큼 이 공간은 더 밝아진다.

그리고 언젠가, 벽의 마지막 빈 자리에 마지막 포스트잇을 붙이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알 것이다.

이미 충분히 서로의 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 믿음을 품고, 다시 책을 펼친다.


수요일의 손끝에서, 다음 문장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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