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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라떼와 아트

<청소, 생각>

by 권아영

카페에 신입 바리스타가 들어오면 으레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라떼 아트 수련이다. 어떤 카페에서는 라떼 아트를 하지 않는다는데, 이곳에서는 필수다. 보통 가장 숙련자인 바리스타가 (이를테면 팀장님이나 매니저님) 가르치는데, 그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수련생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처음엔 맹물로, 그다음엔 퐁퐁물로, 마지막엔 진짜 우유로 연습한다. 한 잔의 라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유 스팀을 알맞게 만들고, 잔의 각도와 우유를 붓는 속도, 방향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 가장 난관은 역시 라떼 아트 단계다. 뽀얗고 통통한 하트를 그려내야 하는데, 곁에서 슬쩍 봐도 분명 쉽지 않아 보인다. 나도 라떼 수련 기간에는 꽤 바쁜데, 수련생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내놓는 라떼 잔을 설거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끔히 닦아놓은 라떼 잔은 다시 수련생들의 연습 도구가 되고 다시 닦고.. 하루에 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곤 한다.


“이번엔 그래도 하트처럼 보이긴 하죠, 구석에 몰려있긴 해도.”

“오, 진짜 하트가 나왔네요.”


처음엔 하트보다는 박쥐, 찢어진 나뭇잎 같은 모양을 내던 수련생들이 점점 정석 하트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누군가의 성장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건 참 귀한 일이구나 싶다.


수련은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 꾸준히 이어진다. 그리고 라떼의 계절, 가을이 시작되면 드디어 멋진 하트가 그려진 라떼를 선보이는 것이다. 그간 노력의 결실이 작은 라떼 잔 안에 가득 담긴다. 손님들이 깔끔하게 비운 잔을 보면 나도 같이 뿌듯해진다.


바리스타들의 성장기를 보고 있노라면, 예술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라떼 기술이 아니라, 라떼 ‘아트’라는 이름이 붙어서일까. 내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누군가 해준 말이 있다.

“그때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으면 그게 바로 예술이야.”


처음엔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계속하는 것과 예술이 무슨 상관이지? 예술은 행위가 아니라 작품, 그러니까 결과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몇 년 뒤 잘 안 돼도 계속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애정과 노력을 쌓으며 한 발짝씩 걸어 나가는 것, 지쳐서 넘어져도 결국엔 일어서서 다시 방향을 잡는 나날들, 그 순간들 자체로도 이미 예술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라떼 ‘아트’의 아트도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바리스타들은 오늘도 꾸준히 라떼‘아트’수련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당장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어 보이고, 이 세상에 나만 똥멍청이가 된 기분에 사로잡혀도 어쩔 수 없다. 라떼처럼,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어느 계절이 오면 빛을 발할 것이다. 그때까진 나도 수련 또 수련, 정진 또 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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