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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창문에 찍힌 손바다다닥

<청소, 생각>

by 권아영

아이들은 창문과 유리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오는 주말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손바닥 자국이 다다닥 찍혀있다. 만약 계약서에 지장을 저렇게 찍어댄다면 아마 성인이 되기 전에 빈털터리가 될 텐데, 싶을 정도다.


창문엔 손바닥 자국뿐 아니라, 입술 자국도 발견된다. 보고 있으면 아주 귀엽다. 얼마나 신났으면 유리창에 뽀뽀까지 했을까. 세정제를 칙칙 뿌려 닦으면서 생각해 본다. 나는 기쁠 때 어떻게 행동하더라?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너무 신나고 날아오를 것 같을 때? 흠, 그런데 그런 걸 언제 느껴봤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 전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는 좋아도 좋은 게 아니고, 설령 너무 좋다 할지라도 그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점점 커진다. 그래, 생각해 보면 몇 년 전부터 나의 좌우명은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슬픈 일이 생길 때 너무 슬퍼하지 않기 위한 다짐이었는데,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생겨도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너무 신나서 마구 뛰어놀다가 창문에 손바닥도 다다닥 찍고, 뽀뽀도 쪽 한다. 온몸으로 마음껏 행복할 수 있다니, 그것도 복이다. 나도 이제 신나는 일이 생기면 방방 뛰어볼까? 유리창에 손자국을 찍는 건 그곳의 청소 직원에게 미안하니까, 방방 뛰어야지. 근데 그건 또 잔디를 관리하는 직원이나, 혹 아래층 사람들에게 민폐 아닌가? 아아 어른이 되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다. 그렇담 어쩌지? 나는 너무너무 기쁘고 신날 때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한창 글을 쓰는 중에, 남편이 나를 부른다. 그래 나는 남편이 있었지. 그럼 나는 방방 뛰는 대신, 남편과 손바닥을 짝짝 맞추고 뽀뽀를 쪽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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