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 퐁퐁의 자격

<청소, 생각>

by 권아영

설거지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나는 예전엔 수세미라고 생각했다. 그릇에 직접 문질러야 하니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두툼해서 거품을 풍성하게 낼 수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카페에서 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퐁퐁이다. 수세미야 어찌 됐든 철 수세미가 아닌 이상 큰 차이는 없는데, 퐁퐁은 이야기가 다르다.


거품이 안 나는 퐁퐁이 있다. 에이 그런 퐁퐁이 어디 있어? 하겠지마는, 정말 그런 퐁퐁이 있었다. 그 퐁퐁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아마도 카페 측에서 평소와 다른 더 저렴한 퐁퐁을 주문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퐁퐁 치고는 좀 게을렀다. 적어도 서너 번은 펌핑하고 수세미를 마구 비벼야 거품이 났다. 퐁퐁인데 왜 이렇게 거품에 박한 거야? 이건 직무 유기 아닌가?


물론 식기 세척기를 이용하긴 하지만, 초벌 설거지 작업이 꼭 필요하다. 컵에 남은 입술 자국, 생강차를 마신 뒤에 남는 생강 조각 등은 직접 닦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이제 내 손에 착 붙을 만큼 적당히 길이 든 수세미도 새 퐁퐁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아무리 문질러도 미끌미끌, 제대로 닦이는 느낌이 없으니 괜히 손힘만 더 들어갔다. 아 힘들어, 이거야말로 월급 루팡 퐁퐁이구만.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원래의 퐁퐁이 다시 돌아왔다. 역시 다른 직원들도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거품이 빵실빵실 나는, 즉 본인의 역할에 충실한 퐁퐁을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설거지가 다시 즐거워졌다. 역시는 역시구만. 그러다 문득, 자기 일에 진심인 이들이 인정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11화9. 먼지 상태에 따른 계절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