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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맛 교향곡 Dec 27. 2020

별로 오르는 사다리-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을 읽고

1. 별바라기

  철들 무렵부터 내게 있어 커다란 흥밋거리 중 하나는 도대체 무엇이 밤하늘의 별들을 그리 반짝이게 하는가 였다. 비록 고향인 서울의 밤하늘은 오염되어 빛을 잃은 지 오래지만,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었던 강원도의 밤하늘은 마치 반짝이 가루를 뿌려놓은 듯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유학길에 오르고 밤늦게 도서관에서 힘든 공부를 마치고 귀가할 때면 하늘의 별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내 귀갓길을 따스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먼 이국의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장 먼저 오리온자리를 찾았다. 그리스 영웅의 벨트를 이루는 세 개의 별을 찾고 그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알파별인 베텔게우스를 찾았다. 이후 근처에 숨어있는 플레이아데스 성단까지를 더듬어 찾으면 어느덧 기숙사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아틀라스의 일곱 자매'라 불리는 플러이아데스 성단.




  하지만 뼛속부터 문과였던 나는 학부는 역사학을, 석사는 법학을 전공하며 우주의 탐사와는 가장 반대의 길을 걸었다. 아니, 오히려 이과 공부에 도무지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문과의 길을 걸었다고 봄이 보다 타당하다. 그럼에도 별들과 그들이 박힌 천구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였고, 이에 나는 보상적으로 우주에 관련된 영화, 책, 게임물 등을 두루 섭렵해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리도 인기가 없다는 [스타 워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는 내가 가장 즐기는 영화 장르 중 하나이며, 가장 오래 즐겼던 게임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브 온라인]이라는 게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입대 후 20년 3분기 진중문고에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이 있었음을 알았을 때, 망설임 없이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2. 인류세(anthropocene) 대멸종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대중과학서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반려자 같은 책이다. 실제 전자의 저자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의 아내로서 [코스모스]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코스모스-가능한 세게들]을 지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코스모스]가 인류가 여태껏 천체물리학을 발전시켜온 괴적 과 미래의 발전상을 문과적 감성으로 담담하게 서술한 책임에 반해,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은 인류가 진화의 태동기부터 발전해온 과정, 먼 우주에 존재하는 수없이 다른 세계들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시대정신적 문제들을 화려한 삽화들과 함께 서술해 놓은 책이다. 그러므로 두 책은 같은 듯 다르다. 마치 서로를 공전하는 쌍성계의 각기 다른 두 별처럼.


  저자 앤 드루얀은 미시와 거시를 넘나들며 다양한 세계들을 탐험한다. 그중에는 저 멀리 토성의 위성인 앤켈라두스와 유로파부터 미시 세계인 세포의 유전자까지 있다. 거문고자리 배타의  두 별은 서로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불의 다리를 놓아 손잡고 있어, 영원이 서로 함께할 운명이라고 하여, 우주적 스케일의 로맨스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우주의 가능성들과 우리가 아직 가지 못한 우주의 장소들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을 읽으면 미지의 세계를 처음 접한 지리적 발견의 시대의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까지 든다.




접촉 쌍성계의 두 별은 영원히 함께할 운명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드루얀은 우리가 지리적 발견의 시대를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로 끝맺은 것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그녀는 책을 통해 우리 인류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상 큰 대멸종의 시기가 과거에만 다섯 번이 있었고, 현재 인류에 의해 그 여섯 번째(인류세 대멸종)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우리 인류가 지금과 같은 지구 파괴적 행태를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눈부신 과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별들로 오르는 사다리를 오르기도 전에 그 사다리가 발 딛고 있는 대지를 망쳐버릴 것이라 경고하는 것이다. 인간의 시대가 지구 생명의 마지막 시대가 되지 않도록.



3. 별로 오르는 사다리

  하지만 드루얀이 마냥 무서운 말로 독자들을 겁박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어두운 미래의 가능성만큼,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과 그리고 걸어 나갈 길이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밝게 빛나듯 말이다. 우리 인류는 5억 4000만년전 크기가 1밀리미터뿐이 되지 않았던, 마치 왕만두처럼 생긴 '사코리투스 코로나리우스'라는 단순한 생명체로부터, 별을 탐사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264쪽) 또한 우리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 수렵 채집 사회로부터 우리 태양계 바깥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문영으로 성장해 낸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류야말로 인류 스스로에 의해 발생한 대멸종을 뒤집을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희망의 예언서인 것이다. 이 책에 서술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에게는 기술적 사춘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작은 행성을 보호하고, 시공간의 망망대해를 항해할 안전한 항로를 찾아내어 별로 오르는 사다리를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진중문고를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양질의 책을 장병들에게 제공하는 국방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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