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저녁 스테인리스 배수구 거름망의 음식물을 비우고, 배수구 거름망과 덮개를 이물질 없이 깨끗하게 닦는다. 이삼일에 한 번은 저녁에 세척한 후 다용도실에 두고 완전히 건조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팔팔 끓여서 부어 간단한 소독 한다. 과탄산소다+끓인 물 조합으로 청소를 했던 적도 있는데,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한다고 해도 호흡기에 좋지 않다는 말이 있어 일단 보류 중이다.
배수구 거름망과 덮개를 모두 올스테인리스 제품으로 바꿨다(원래 설치되어 있던 건 플라스틱이 혼용된 제품). 배수구에 음식물 탈수 기능이 있어서 다이소 같은 데서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거름망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인터넷에서 ‘올스텐 탈수 배수구 전용 거름망’을 찾았고, 배송이 오는 기간 동안 사이즈가 안 맞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꼭 맞아서 무척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배수구 거름망과 덮개를 새것으로 교체해 준 이후 나는 한결 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매일 거름망을 비우고 세척한다. 이게 정말 기분이 좋다. 설거지하다가 그 사이로 젓가락이 잠깐 빠져도 예전처럼 움찔하면서 다급하게 건져내고 빼고 나서도 찝찝함이 남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냐 하면 전혀, 절대 아니다.
예전에 잠시 회사 동료들과 함께 살았던 시기가 있는데, 부모님 댁에서 벗어나 처음 혼자 살아보는 것이었고 집안일에 대한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배수구거름망에 음식물이 쌓이고, 그걸 버려야 한다는 걸 몰랐다. 같이 살던 동료가 처리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 과정을 제대로 알게 됐는데 놀라고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이 주로 담당했고, 사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라 그것들을 똑바로 마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집안의 일들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에 살림에 관련된 책들을 읽다가(살림도 공부해야 하는 타입), 이 배수구통을 마지막으로 설거지해야 할 그릇처럼 생각하고 음식물이 잔뜩 쌓이기 전에 매일매일 처리하면 관리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으레 당연하고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중요한 건 책에서 배운 대로 실천을 해보니 정말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
일단 매일 처리하다 보면 음식물을 거름망에 오래 방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냄새나 비주얼이 훨씬 견딜만한 상태다. 밥알이나 채소가 물기와 뒤섞인 정도의 느낌이라 그걸 똑바로 ‘보면서’ 후딱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름철 정도 아니면 냄새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이전의 세입자와 내가 사용한 시간의 누적으로 애초에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기존의 플라스틱 배수구통은 장갑을 끼고 만져도 미끌미끌 싫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퍼뜩 아예 배수구 거름망을 새로 사서 처음부터 제대로 관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하는 김에 꼭 바꿔보자 생각했고 이사한 집(신축은 아니라 오래 사용된 것이었다)에 본격적으로 맞는 사이즈를 찾기 시작했다. 두어 번의 시행착오 끝에 올스테인리스 제품으로 우리 집 싱크대에 규격과 용도가 꼭 적당한 배수구 거름망과 덮개를 발견하고는 구입해서 매일 깨끗하게 관리 중인데, 이 행위는 상징적인 의미면에서 특히 만족도가 높다.
내게 주는 상징적 의미는 이렇다. ‘일상에서 방치되는 영역을 없게 하는 것'. 저곳이 더럽다고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더 처리하기 힘들어진다고 무의식 중에 계속 맴도는데, 보거나 만지는 과정이 즐겁지 않아 미루고 싶다. 그렇게 몇 번 미루다 보면 별 거 아닌 일이 스트레스가 된다. 어떤 일들은 방치하는 시간만큼 나중에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지만 뭔가 일상에서 계속 방치되는 영역이 있는 기분. 심리적 영역이든, 현실의 영역이든 이 행위는 내게 이러한 부분을 대면하고 관리하는 기쁨을 준다. 집안일 그러니까 살림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 하찮은 행위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내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정돈된 생활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으로는, 애매하게 적은 양이 남아 더 이상 안 먹게 되는 소스통이나 반찬통을 오래 방치하지 않고 상하기 전에 처리하는 일, 계절 지난 옷 세탁&보관해서 옷장 공간 여유 있게 유지하기, 치과에서 스케일링받기, 매일 가계부 기록, 노트북 폴더트리와 파일 정리, 머리카락은 보일 때 싹 모아서 바로 치우기 등이 있다. 비교적 즉각적인 만족과 성취감이 있다. 심리적인 영역은 역시 글쓰기와 관련되어 있는데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회피, 왜곡, 억압, 무시하지 않고 자기 검열 없이 진실된 일기를 쓰는 것이 내게는 가장 유효하다.
글을 쓰다 보니 방치된 것을 관리하는 데는 심리적인 장벽을 낮추는 장치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배수구 거름망을 새롭게 교체한 것이, 물론 그 이전부터도 매일 비우고 세척하는 것은 실행하고 있었지만, 이 과정을 훨씬 더 즐겁고 지속가능하게 만들었다. 나의 의지는 기본 조건이지만 그 의지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장치도 중요하다.
싱크대 배수구 거름망을 청결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내게 어떤 종류의 일을 방치하지 않고 매일 작은 노력을 기울여 작은 해결을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집 배수구 거름망은 오늘도 깨끗하다. 스테인리스는 조용히 반짝인다. 누가 집에 놀러 와도 전혀 보이지 않는, 눈에 띄지 않는, 오로지 자기만족의 영역. 이것은 내게는 정말 큰 의미이고, 작은 성장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보이는 부분을 중심으로 ‘좋아 보이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전혀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날 것의 일상을 직시하고 윤기 내는 것.
이른 아침, 전날 밤 다용도실에 건조해 놓아 햇살에 반짝이는 깨끗한 배수구 거름망과 덮개를 싱크대 제자리에 둘 때의 기분이 특히 좋다. 미끌거리지 않고 뽀송뽀송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 신기한 건 이런 습관이 쌓이니 정신적인 영역이나 다른 현실의 영역에서도 방치되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건드려지기 시작한다는 것. 무엇이 됐든 겁먹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매일 조금씩 대면해 나가면 된다. 결국에는 상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