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런 항아리처럼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살아보자
어렸을 때 ‘후회하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밥 먹듯이 후회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점이 이어져 선이 되듯이 후회라는 점과 점이 붙어서 삶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후회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마음만큼 후회 없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후회에 동화될 때가 있는데 잘못된 과거를 무시하는 오만이 생기는 게 문제다. 오만 속에서는 후회는 없고 행동의 정당성만 남는다. 후회스러운 삶이 반복되더라도 반성보다는 남 탓을 하게 된다. 결국 후회가 반성을 밀어낸다. 이 때 이기심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벌써 올해의 절반이 갔다. 이 시점에서 측정해본 후회의 크기는 얼마만한가. 후회를 생각하면서 별안간 장독 생각이 났다. 항아리를 닮은 삶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우직한 모양을 갖추고도 성자(聖者)가 된 것처럼 행복해 보이는 것이 장독이다. 항상 웃는 모습이고, 넉넉함이 넘치는 풍요로움을 갖췄다. 항아리는 안에 있는 내용물과 상관없이 우직함에서도 언제나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항아리 닮은 삶을 사는 사람을 찾아봤다.
# 장독 풍경 1. 김세중조각상 청년조각상을 받은 조각가 이환권은 ‘장독대’ 작가로 인기가 많다. 그는 평소 장독대 같은 풍경을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공감’이야말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코드가 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작품은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남자, 빨래를 널다 말고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 공부하기 싫어 책상에 엎드린 채 공상에 잠긴 소녀와 같은 일상의 풍경들이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2008년 서울 정동 문화회관에서 연 ‘장독대’ 전시가 이환권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처음 알렸다. 가족의 모습을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독들에 은유한 작품이다. 그는 펑퍼짐한 장독처럼 사람 사는 풍경을 푸근하게 빚어내어 사람들을 흐뭇하게 웃게 하는 게 제일 기쁘다고 말한다.
# 장독 풍경 2.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부수베리 계곡 초입에는 3천여 개가 훌쩍 넘는 장독들이 있다. 냇가를 바라보는 넓은 들판에 어른 키의 반만 한 항아리들이 줄지어 장관을 이룬다. 동일한 모양의 장독 수천 개가 넓은 마당에 도열한 모습을 보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관광명소가 된지 꽤 시간이 지났다. 이 장독의 주인 부부는 서울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와 파계 스님이다. 장독에는 몇 년 된 된장과 간장이 들어있다. 여인은 장독대에서 홀로 첼로를 연주한다. 관객이라고는 된장과 간장을 담은 장독들뿐인데도. 이곳에서 장독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절대적 진리로 삼았다. 된장의 다섯 가지 덕 - 다른 것과 섞여도 자신의 맛을 고수하는 단심(丹心),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항심(恒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없애는 불심(佛心), 매운 맛을 부드럽게 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화심(和心) - 을 간직한 영원불변의 고귀한 식품을 만든다는 신념이다. 첼로 연주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일환이다. 올곧은 고집과 노력이 있는, 장독들이 천지인 곳이다.
# 장독 풍경 3.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장독의 역할이 있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후배인 정병욱에게 원고를 맡기고 학도병에 끌려갔다. 정병욱도 학도병에 징집되어 전선으로 떠나기 전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기약 없는 인사와 함께 짐을 맡겼다. 정병욱은 일제의 태평양 전쟁 전선에 투입됐다가 부상을 입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방 후 윤동주가 후쿠오카의 교도소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정병욱은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징병 전에 맡긴 짐 속에 있던 원고를 잘 간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아들의 짐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양조장 큰 장독에 숨겨 놓았다가 해방 후 이를 꺼내 명주 보자기에 여며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장병욱의 어머니가 아들이 맡겼던 윤동주의 원고를 장독에 보관하지 않았더라면 윤동주 시집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집터에서 장독대는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한다.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성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장독은 가장 애지중지하는 집안의 보물이었다. 크고 잡은 항아리들이 모여 있는 장독대는 소원을 비는 장소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지극정성으로 자식의 성공과 건강, 가족의 행복을 빌었다. 어머니의 정화수가 신을 움직일 때도 있었다.
이사할 때면 항아리부터 챙겼다. 고려청자만큼 섬세하거나 정교하지 않은 항아리지만, 단아한 맵시와 온화한 성징을 갖췄다. 언제나 안전한 장소는 항아리 차지였다. 그늘에서도 빛이 났고, 사계절 내내 온전하게 아무 말 없이 세상을 품었다. 사시사철 긴 세월동안 간장과 된장을 고스란히 안았다. 겨울철엔 김치를 받아들였다. 속을 차지한 어떤 것들이라도 변형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항아리가 많은 집이 부자였다.
항아리는 비움과 채움을 모두 갖고 있다. 소유를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인간들에게는 자연의 순환원리처럼 스스로 비워내기를 보여준다. 항아리가 가득 채워져 있으면 더 이상 채울 수 없다. 비워내야 비로소 순환할 수 있다. 비워내고 한결 가벼운 그릇이 되었다가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듯이 채움을 포용하는 것이 항아리다. 무소유의 정신을 잘 알고 있다.
항아리는 소통의 그릇이다. 항아리는 작은 모래 알갱이가 섞여 있는 거친 흙을 사용하여 만든다. 겉에는 낙엽이나 풀이 섞인 부엽토를 바른다. 소나무를 태운 잿물을 발라 가마 안에서 고열로 굽는다. 굽는 과정에서 항아리에는 미세한 숨구멍이 생긴다. 이 때 생긴 구멍은 그릇의 안과 밖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게 만든다. 항아리 안에 담긴 내용물이 잘 익을 수 있는 요소다. 항아리는 내용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미생물이나 효모 등이 통과할 수 있고, 온도 습도가 조절된다. 항아리의 장점인 통기성이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원활한 소통을 이룬다. 막힘이 없는 항아리 소통법을 배워야 한다.
항아리는 친환경적이다. 항아리를 구울 때 나무가 타면서 발생하는 검댕이가 항아리의 안과 밖을 휘감으면서 방부성 물질이 입혀진다. 이 때문에 해가 바뀌어도 내용물들은 썩지 않고 보존된다. 항아리는 깨어져 사용할 수 없게 되더라도 분해된다. 2년이 지나면 자연 상태의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도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자세를 낮춰야 할 이유다.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의 시는 이렇다. ‘洛陽親友如相門 一片氷心在玉壺(낙양의 벗들이 내 안부를 묻거든 옥 항아리 속 한 조각 얼음같이 맑게 살고 있다고 전하시게). 항아리는 맑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문태준 시인은 〈빈집〉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오랜 후에 당신이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을 보신다면, 그 안에 고여 곰팡이 슨 내 기다림을 보신다면 그래,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고 험한 마당 후련하게 쓸어줄 일입니다.’
청아한 하늘아래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독대처럼, 아름다운 생명의 찬란함이 익어가는 항아리처럼, 우리의 삶이 농익은 간장과 된장처럼,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하게 가슴 뭉클한 삶을 살아보자. ‘소 잡는 칼로 닭은 잡는다’는 뜻의 우도할계(牛刀割鷄)처럼 항아리 같은 자신을 간장종지처럼 여기면서 살지는 말자. 구멍이 뚫린 항아리가 되지도 말자. 둥그런 항아리처럼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