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되지 않은 만년필처럼, 녹지 않는 몽블랑의 만년설처럼 사랑해요...
시들어가는 봄꽃들의 아쉬움이 적지 않다. 공간에 가득한 꽃들의 향연 끝에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허망함이 가득하다. 평소 터프한 사람이라도 봄꽃 앞에서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꽃을 보면 근육질 많은 몸짓에서도 당연히 얼굴의 근육이 출렁거린다. 남녀노소 모두 절로 마음이 너울거린다. 바로 꽃의 힘이다.
땅 만 보다가 봄이면 꽃을 쳐다본다. 평소 뒷짐을 지고 다니다가도 두 손을 풀어 꽃을 만져본다. 봄날은, 그리고 봄꽃은, 죽어 있던 사람들의 감성을 살린다. 이랬던 봄이 아쉬움을 빨간 우체통 안에 넣고서 다음을 기약하며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봄이 지나간 흔적을 남기려고 가끔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가볍게 봄꽃을 스케치하고, 꽃과 봄에 취한 마음을 글로 표현해본다.
‘푸르름이 짙어지니 가슴의 꿈도 여물어가는 느낌이다/ 봄꽃 앞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속닥거림은 아지랑이 사이로 같이 살랑거리며 달아난다/ 타인에게는 의미 없는 언어일지라도 그네들에게는 절실한 넋두리 일터…/ 새파란 하늘은 완벽하게 화창함을 짖어낸다/ 홀로 피어오르는 꽃들의 설렘은 혁신을 꿈꾸는 청춘들의 취향처럼 보인다/ 눈빛이 밝아진다/ 미소가 반짝인다/ 봄은 마음으로부터의 여행이다/ 나를 찾아 가는 봄이다/ 너의 마음을 알아낼 수 있는 봄꽃이다./
나는 만년필 글씨를 좋아한다. 만년필을 손에 쥐는 순간 작가가 된 듯하고, 또 화가가 된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만년필을 갖고 있으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끌어낼 수 있어 좋다.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행복을 그려낼 수 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원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에는 여러 유명인사들의 물건에 대한 글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김정운은 만년필 이야기로 글을 채웠다. 대강 이렇다.
‘요즘에는 수첩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만년필도 자주 사 모은다. 일 년에 수십 자루는 족히 사는 것 같다. 싼 게 몇 십만 원이다. 은행 지점장 하는 재림이는 기껏 돈 벌어서 자기 은행에 예금이나 하지 무슨 만년필을 그렇게 자꾸 사냐고 타박한다. 그럼 난 이렇게 흥분하여 대답한다.
“그럼 넌 죽을 때까지 200원짜리 볼펜이나 쓰다 죽어라, 이 자식아!”‘
물질과 권력의 탐욕과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향한 욕망이 득실거리는 물질주의 속에 우리가 있다. 욕심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아가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연한 삶을 사는 것이 좋다. 톤이 너무 강하면 소음이다. 주변 사람이 불편해하고,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접속사를 없애야 한다. ‘그러나’, ‘그런데’, ‘그리고’, ‘하지만’ 따위 말이다. 접속사의 남발은 욕심의 연장이고, 자기주장의 정당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년필 글씨처럼 유연하고 여유 있게 자기표현을 하면서 인생의 접속사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봄꽃을 볼 때처럼 마음의 생기와 긍정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기를 수 있다.
삶의 어조를 감성으로 충만한 문학적 접근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새롭고 싱싱한 종이 위에 활달한 생명력의 기운과 신성한 힘을 쏟아내는 만년필처럼 말이다.
“너는 시를 계속 써라. 총은 내가 들 거니까.”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의 대사다. 영화 <동주>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한 송몽규와 그의 친한 벗이자 사촌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다른 영화다.
윤동주는 송몽규처럼 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펜을 높지 않고 시를 쓴다. 청년 동주가 창작에 매진하는 장면에서, 동주의 손끝에서 그의 영혼인 만년필의 움직임이 거침없다. 영화 속 만년필은 문학에 대한 동주의 순수한 열망과 타고난 재능을 의미한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계속 시를 써야만 했던 번뇌를 표현한다.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은 만년필 수집가다. 만년필 100여 자루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만년필 잉크가 굳을 틈을 주지 않으려고 6,000편이 넘는 옛시를 베껴 썼다. 그 옛시 공책만 70권이 넘는다. 그런 필사의 노력이 <나무가 말하였네>라는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책머리에 쓴 글 제목은 이렇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만년필로 쓰다". 무학(無學)이었던 부친이 남긴 유산 가운데 127만원을 상속받아 만년필 한 자루를 사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처럼 만년필은 사랑이다.
만년필은 잉크를 먹는다. 만년필이 하늘이라면 잉크는 땅이다.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감정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만년필의 촉은 인생의 뿌리요 삶을 기록하는 영혼이라 할 수 있다. 만년필은 주인의 생각을 그대로 담는다. 검정색, 파란색, 좋은 글씨, 나쁜 글씨, 멋진 글, 음탕한 글.
만년필은 주인의 영혼을 읽어내듯이, 하얀 종이 위에 춤을 추듯이 글의 꽃을 피운다. 만년필은 생각의 만물을 엮는 신비로운 사다리가 되기도 한다.
사회가 점점 더 디지털화가 되면서 우리의 삶은 날카로워진다. 정신적으로 얻는 것이 많을지 모르지만 슬픔과 좌절의 늪에 자주 빠지게 된다. 더불어 상실감에 빠진 마음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소실된다.
만년필은 어떤가. 감성 속에서 내가 움트고, 내가 자라고, 내가 삶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봄날의 새싹과 같다. 많은 것을 얻게 한다. 밝음과 활력과 배려, 그리고 행복감을 많이 전해준다. 글심 향기가 자라나게 하는 게 만년필이다.
나는 25년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 곧바로 소도시의 작은 주유소 운영에 참여한다. 끝남과 시작의 사이에 쉴 틈이 없어서 1박 2일 동안 짧은 남해 여행을 다녀왔다. 혼자서 나섰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포장이 그럴듯한 상자 하나를 내 앞에 내놓았다. 뜯기도 아까울 정도였던 포장지를 분리하고 상자를 열었다. 만년필이었다. 명품 중에서도 꽤 비싼 가격의 최상급 제품이었다.
“이미 직장을 마친 내게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이요?”
나의 질문에 아내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비싼 만년필이라서 당신은 더더욱 필요치 않는 물건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일 앞에는 묵직한 무게감이 깃들여있는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람이 명품이 되는 법이에요. 그 만년필로, 당신이 나중에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다고 여겨질 때 사회를 위해 기부를 하시고, 그 만년필로 기부증서에 당신 이름을 서명하세요.”
나는 잠시 멍했다. 새롭게 시작한 주유소 사업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던 터라 마음의 부담감이 적지 않았었다. 아내가 전해준 만년필 선물과 그 의미 앞에 나는 어떤 때보다 강한 의욕과 용기를 품을 수 있었다.
아내는 만년필이 성공한 남자의 필수품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영원히 고갈되지 않은 만년필처럼, 언제나 녹지 않는 몽블랑의 만년설처럼 당신을 사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