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는 불행만을 비교해라

행복은 실천이다... 그리고 행복의 시작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by 별통

오늘도 나는 ‘좋아요’를 눌렀다. 페이스북의 용병이 된 것 같다. 그냥 지나치다가도 다시 되돌아가선 ‘좋아요’를 누른 적도 있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있지만, 얼굴을 맞대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닭살 돋듯이 밍글밍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정 표현에 익숙치 않는 보편적인 성향 탓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상에서는 ‘좋다’라는 표현이 언제든 가능하다. 안 받아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일랑 전혀 없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닭살이 돋지 않는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또 하나의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소통창구인지 모르겠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가 재미있는 칼럼을 실었다. “왜 페이스북이 우리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지난 1982년부터 모든 거주자에게 석유에서 나오는 배당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8%가 “저유가로 알래스카 석유 산업이 타격을 입었음에도, 기금을 보존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7월 알래스카를 방문한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다른 많은 나라에 알래스카의 사례는 아주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기본소득세 때문이었다.

FT 칼럼의 주장은 이렇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새로운 석유와 같다. 석유가 알래스카에서 한 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페이스북이 기본소득제를 지급할 수 있지 않겠느냐. 사용자 수 억명의 데이터를 독점하다시피 한 페이스북이 거기에서 오는 이득을 ‘기본소득’ 개념으로 돌려줘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마크 주커버그는 퍼주는 리더십의 소유자이다. 지분 기부를 하고, 파리 테러 당시에는 프랑스 국기를 사용자들의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 배경으로 쓰게끔 배려도 했다. 주커버그의 기본소득제 쾌척(快擲)을 기대해본다.

여하튼 소셜미디어가 대세다. 대세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라는 공간에서 자신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실제적 형상과 접촉이 필요한 대상이 바로 눈앞에서 안 보이는 세상이다 보니 사람들은 자존감에 대한 욕망을 앞세운다. 그렇기에 소셜미디어에서는 내부검열이 자기자신의 몫이다.

SNS를 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소위 끼리끼리, 유유상종(類類相從)식 애정 표현이 그 이유다.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유명 인사 - 꼭 그렇진 않더라도 대중적, 전문적 직업을 가진 - 들에 대한 호감지수가 꽤 높다. 멋진 글, 멋진 장소로의 여행 사진, 나름 알려진 사람들과의 친교의 사진들이 전시회 하듯 펼쳐진다. 어쩜 남들의 인생은 이처럼 품위 있고 우아한 것인가. ‘좋아요’를 죽어라 누르면서도 부럽기만 하다.

보통 사람은 자신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3인칭의 관점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행동이나 외모, 언어구사 등이 타인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은 덜 행복할 수 있다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본능적 관심인 3인칭 관점을 누르고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행복연구소가 있다. 마이크 위킹(Meik Wiking)이 설립한 행복 싱크탱크(think tank)다. 위킹 소장은 덴마크 외교부를 거쳐 민간기관에서 일하다 마흔아홉에 불과했던 롤 모델 직장 상사와 어머니를 잇달아 잃고 나서 인생항로를 바꿨다. 당시 그의 나이가 서른 셋 이었을 때다. 그는 앞으로 15년 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 행복연구소 열었다.

위킹 소장은 행복연구소에 가장 많은 문의를 해오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 중 하나로 “남과 비교하는 사회 분위기”를 꼽았다.

비교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제는 소셜미디어로 옮겨 왔다. 행복연구소에서 출간한 ‘페이스북 연구’에는 재미있는 조사가 있다. 성인 10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절반에게는 1주일 동안 페이스북을 못하게 했다. 나머지 반에게는 페이스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작 1주일의 기간이었지만, 결과를 흥미로웠다.

소셜미디어와의 접속이 차단됐던 사람들이 계속 접속한 이들에 비해 더 행복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더 만족감을 느꼈다. 외로움이나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는 덜 경험했다. 그 이유는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자신을 이해하는 뇌 때문이다.

위킹은 세계행복지수 1위에 오른 덴마크의 행복을 ‘휘게’에서 찾았다. 그의 저서 ‘휘게 라이프’를 보면 덴마크어 ‘휘게(hygge)’는 영어로 옮기면 ‘coziness’(안락함, 아늑함) 정도가 가깝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휘게’에는 함께 한다는 느낌, 화목, 따스함 등이 있다고 덧붙인다.

그가 제시한 ‘휘겔리한 삶’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다. △촛불이나 벽난로, 어두운 조명으로 만든 분위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달콤한 음식 △TV시청이나 보드게임 등 함께하기 △매사에 감사 △경쟁 대신 조화 △편안한 휴식 △정치 이야기는 나중에 △추억나누기 △평화롭고 안전한 보금자리 등이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접하는 인생들 대부분은 미화된 것들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친구들의 삶은 ‘좋은 이야기’ 만 쌓여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환상적인 비주얼이라 더욱 맛있어 보이는 음식만 먹고, 평생 가볼까 말까 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보니 부러움이 온몸에 가득 차서 ‘좋아요’룰 누르게 된다. 그리고 또또 ‘좋아요’를 누른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나의 글이 ‘휘겔리한 삶의 십계명’처럼, 저러하다면 내가 죽어라 눌러주는 ‘좋아요’ 숫자만큼 내 글에도 ‘좋아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일게다.

행복수업을 고안한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탈 벤 샤하르 심리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가 답했다. “글쎄요. 늘 더 행복해지고 있지요.”

행복은 실천이 따라야 한다. 어쩌면 소셜미디어 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우리의 행복실천일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의 지름길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언제나 비교대상들과 가깝게 지내왔다. 본인의 의사와 의지와 상관없이 그래왔다.

분명한 것은 행복은 쾌락과는 다르다. 행복은 즐거움과 함께 그 의미가 공존해야 한다. 주관적 경험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행복은 외형만으로 따질 수 없다. 사람은 타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부를 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 역시 기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좋아요’를 누르면서 부러움의 감정을 터뜨린다면, 그건 불행의 시작이다. 그것은 곧 비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비교는 경쟁의 길로 자신을 인도하는 꼴이다. 소셜미디어는 놀이터와 같다. 많이 놀아야 한다.

행복은 실천이다. 비교해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비교하고 싶다면, 남의 불행하고만 비교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의 시작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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