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사랑을 만든다

요리는 사랑을 창조하는 과정... 설거지는 사랑받는 사람의 몫

by 별통

아내가 책 주문을 부탁했다. 무슨 책인지 궁금해 하다가 요리책인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더구나 한 권이 아니라 시리즈로 구성돼 자그만 치 일곱 권이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요리책을?” “요리는 수양의 개념이 강하다. 재료를 썰고, 양념을 조절하고, 불에 끓이고 익히는 것, 이 과정 끝에 요리는 완성된다. 그것들이 내 손끝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나(吾)라는 존재감을 느끼겠나 못 느끼겠나. 또 만들어 내놓은 음식은 맛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의 표상과 같다. 심혈(心血)을 기울인다는 것이야 말로 요리의 기본이요 상식이다.”

그러면서 아내는 은퇴하면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사놓은 요리책이 7권인데, 하루에 요리를 한 개씩만 해도 평생을 채울 것이다. 굳이 요리학원까지 다닐 필요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내가 한 단어를 가로챘다. “평생! 그래, 평생. 사람은 평생 먹어야 한다. 그러니 요리가 얼마나 중요하겠냐.”

요리책이 도착한 후 아내는 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은근 기대가 됐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먹어만 주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책이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책을 드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식탁의 작은 변화도 끝이 났다. 그러니 나는 요리에 관심을 보인 아내가 낯설기만 했다.

아내가 결정적인 발언을 하기 전까지 나는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살려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신문 기사에서 읽었다며 요리의 사명(使命)을 발표하듯 말했다. “요리는 사랑이다.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매개체이다.”

관련 내용을 찾기 위해 신문 기사를 검색했다. 국내의 한 경제신문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계 피카소’라는 별명을 가진 그랑 셰프 피에르 가녜르를 인터뷰했다는 기사에 그 내용이 있었다. 제목은 “요리는 사랑…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죠” 였다.

세계 1위 셰프로 선정돼 오랫동안 유명 셰프들의 롤모델답게 이렇게 말했다고 지면에 실려 있었다. “유명해지는 것보다 요리로 직원, 고객들에 대한 사랑과 마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요리하면 고객들이 어떤 부분을 좋아할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지 늘 고민하고 직원들과 논의한다”.

가녜르 셰프는 “요리는 잘하는 사람이 평소에 요리하는 법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정말 잘하고 싶다면 요리수업을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교수와 공동 저술한 책 제목은 ‘요리는 기술이고, 예술이고, 사랑이다’라고 한다. 이제야 아내가 요리학원을 다니겠다고 한 것이 이해됐다. 나는 ‘요리는 만드는 사람의 작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소위 먹방이라 불리면서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여지는 맛과 색은 마치 현장에서 먹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방송의 맛집에서 직접 음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과장된 애드리브도 거부감 없이 착 달라붙는다. 가본 적 없고 먹어본 적도 없는 집이라도 구미가 당길 정도다. 이것 또한 가녜르 셰프가 말한 것처럼 그 요리가 기술이고 예술이고 사랑이기 때문 일거다.

우선 요리는 기술이다. 보글보글 끓여내는, 순서대로 투입되는 많은 재료들, 재료가 섞여지면서 바뀌는 색깔과 냄새까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게 만드는 것, 역시 요리는 기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을 연마하고자 요리책을 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 푸드 트럭을 유행시킨 한국인 셰프 로이 최는 “내게 요리는 무술을 배우는 것과 같다.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라고 했다.

다음, 요리는 예술이다. 예를 들어보자. 달걀이 있다. 어느 집이든 냉장고에는 몇 알쯤은 있을 것이다. 그 달걀을 꺼내서 후라이를 만들 수 있다. 그릇에 달걀을 깨트려 휘휘 저어서 후라이팬에 넓게 퍼트려 익히면 오므라이스 덮개가 된다. 풀어놓은 달걀에 당근과 양파를 썰어 넣어 팬에 부쳐서 둘둘 말면 노르스름한 달걀말이가 탄생한다. 노랗게 부쳐진 달걀을 얇게 썰어 떡만두국에 고명으로 올리면 그것은 화룡점정이 된다. 계란탕이 되고 달걀찜도 된다. 끝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달걀 하나가.

요리하는 사이에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요리를 통하여 예술가가 되기 위해 마트에서 카트를 가득 채운 사람이 분명 있다. 그래서 요리책을 보면서 이것도 만들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 얼른 발걸음을 부엌으로 향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멋진 예술작품을 기대하면서…. 이내 머릿속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맛, 색, 향이 갖춰진다. 요리사는 예술가가 맞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셰프 에드워드 권이 말했다. “요리사는 사람의 가장 간사한 부위를 만족시키는 예술가다. 프로페셔널로서 자신에게 혹독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요리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요리를 하면서 어떤 물건들이 과정을 거쳐 다른 형태로 변화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전히 사람의 손만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요리다.

그래서 요리는 ‘사랑을 창작하는’ 과정이다. 창작은 희망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창작)는 것은 곧 대단한 기대(희망)가 따르기 때문이다.

희망은 사랑 앞에서 더욱 간절해진다. 희망이 가득 담긴 한 그릇의 요리가 하나의 작품처럼 누군가 앞에 내밀어진다는 건, 그게 아무리 작은 창작이라 해도 그릇을 앞에 둔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사랑은 아무리 주어도 다 못 주었다고 생각한다. 요리가 그렇지 않은가.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말이다. 역시 요리는 사랑이다.

함민복의 시 ‘만찬’이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 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강을 건너 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중식요리의 대가 이연복 셰프가 말했다. “내가 하는 일에 마음을 담자!”. 가장 잘 나가는 셰프가 한 말이다. 모두가 새겨들어야 한다. 마음을 담아야 작품이 나온다. 맛있는 음식이 탄생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내놓고 싶은, 바로 그 요리다.

세상살이 치여 지친 부품일 뿐이라고 느껴질 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이 필요할 때, 고뇌의 크기와 고단한 삶의 무게를 할인받고 싶을 때, 요리책 속에서 레시피 하나 골라 음식을 만들어본다. 또는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레시피 하나 골라 직접 요리한 음식을 건네 본다. 사랑의 힘이 솟구칠거다.

달걀을 깨뜨리고, 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고, 가스 불에 끓이고 익혀가면서 요리를 하는 존재가 되어본다. 자아의 평화를 확인할 수 있고, 사랑의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삶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고, 퍽퍽한 일상은 이내 사라질 것이다.

역시 요리는 기술이요 예술이요 사랑이다. 그럼 개수대에 가득 쌓여 있는 그릇들은 누가 설거지를 하나? 그것은 요리로 사랑을 받은 사람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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