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묻지 말라’ 마셔요

익숙한 과거는 앞날의 등대가 된다

by 별통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잃어버린 그 님을 찾을 수 있다면

까맣게 멀어져간 옛날로 돌아가서

못다한 사연들을 전해보련만

아쉬워도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1968년 발매한 앨범 <방랑 삼천리>에 신인 가수 여운의 목소리로 실렸던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노랫말이다. 고교시절 야구선수였던 여운은 준수한 외모와 감미로운 음색과 가창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고등학교 시절 음악 감상실에서 만난 여대생을 짝사랑한 추억을 소재로 삼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쉬움이 구구절절하다. 역시 과거는 회상만으로도 소중하다.


사랑스럽지 않는 과거는 내게도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첫 미팅에서 만났던 여학생을 잊지 못하고 밤새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랬고, 술에 취해 잃어버린 지갑을 찾지 못해 추운 겨울날에 종로에서 집까지 걸어야했고, 시험장소를 찾지 못해 시험을 쳐보지도 못하고 특수은행의 취업기회를 놓쳐도 봤고, 양주를 팔던 술집에서 호기를 부리다가 지갑과 손목시계까지 털렸어야 했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프니까 청춘임을 알게 됐고, 몸에 옹이도 생겨났다. 긴긴 여생을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원망하는 후회는 없어야겠다고 자신을 위로도 했다. 과거는 관찰이다.


과거를 소급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해져야 한다’가 최상의 후회일 것이다. 순간순간이 특별해야 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워야 했던 삶이었기 때문이다. 삶의 행위가 긍정일 때 행복으로 연결되고, 부정일 때는 번뇌라는 형태로 기억에 저장된다.


사는 게 재미있는가? 사소한 재미가 최고다. 그것이 모아져 큰 행복이 될 터이니. 재미는 아침부터 곁을 내어준다. 출근길, 딱 맞춰 달려와 주는 지하철이 그렇다. 걸어오는 내 눈 앞에서 극적으로 바뀌어주는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등이 그렇다. 나를 비춰주는 따스한 햇살이 그렇다.


재미는커녕 돌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데 “출입문 닫겠습니다!”가 들려온다. 힘껏 달려왔더니 건널목 파란불은 빨간색으로 바뀐다. 햇살은커녕 미세먼지가 희뿌연 거리를 두 번의 숨을 쉬어야 할 것을 한 번으로 줄여 걷다가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 되기도 한다. 이것도 인생이요 운명이다.


신세 한탄은 항상 과거 지향적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한 숨을 깊이 내쉬며 과거를 후회하곤 했는데,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은 대부분 참에 가까웠을 것이다. 인생은 정말 재미없기만 했고, 경이롭지 못했고, 머피의 법칙은 항상 부모의 곁으로 찾아왔다. 부모의 삶은 언제나 후회의 연속이었다. 재미있는 날 보다는 재미없는 하루가 더 많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과거와 많이 다르지 않다.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인과법칙이다.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가 되고, 현재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되는 것을 말함이라. 현재는 과거의 내가 행동한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의 내가 행동한 결과가 되는 법이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때 부정적 에너지가 나온다고 믿고 있다. 과거지향의 삶은 발전이 없다는 의미여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과거는 다시 살아보려는 힘의 원천이다. 과거를 불러낼 때 필요한 것은 평상심이다. 과거의 감정이 재현되는 것은 결국 같은 일에 대한 반응을 새롭게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를 복기하면서는 욕심과 분노, 어리석음은 떨쳐버려야 한다. 그러면 과거의 회상은 분노로 자극하지 않고, 과거 기반의 마음은 자극을 받게 된다. 과거로 저장됐던 기억은 긍정적 에너지로 변화한다. 실패했던 과거의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삭제된다. 과거의 가시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리셋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불교에는 업보(業報)라는 개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원인은 과거이고, 결과는 현재이다. 즉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의 원인이 된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바라는 그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우러난다. 오늘 내가 겪은 불행이나 불운을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가 곧 불행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위가 만들어 낸 결과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순간 그가 지닌 생각대로 되어간다. 이것이 업(카르마)의 흐름이요 그 법칙이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은 흘러

끝없는 대지 위해 꽃이 피였네

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구름은 흘러가도 설움은 풀려

애달픈 가슴마다 햇빛이 솟아

고요한 저 성당에 종이 울린다

아 흘러간 추억마다 그립던 내 사랑아

얄궂은 운명이여 과거를 묻지 마세요.



1958년 발표한 가수 나애심의 곡이다. 과거를 묻지 말란다.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는 인생사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알 수 있다. 아픈 과거가 휠씬 긍정적인 에너지로 거듭날 수 있다. 슬피 울었기에 웃을 수 있다. 지난날의 삶은 비밀일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볼 수 있어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자랐던, 맘껏 뛰어 놀았던 동네를 찾았다. 도로가 넓어지고 건물이 높아졌지만 전파상에서 나오는 노랫가락의 경쾌함은 그대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나한테 미래를 내밀었던 과거 동네가 끔찍하지 않는 것은 이미 행복의 나라로 인도해줄 과거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신이 나타나 “너의 과거는 어땠느냐?”라고 물어오면 “현재의 내가 괜찮게 보이지 않나요?!”라고 말할 것이다. 적어도 재미없는 하루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과거와 현재가 다투면 미래를 잃는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과거를 묻지 말라!”하는 이가 나타나면 “익숙한 과거는 앞날의 등대가 된다”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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