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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살롱 Dec 27. 2019

남의 말을 끊으면 외로워진다

경청하는 사람의 매력

통화만 하면 점점 더 목소리를 크게 내게 되는 친구가 있다. 왜냐하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계속 본인 이야기로 치고 들어오니 그 말에 대응하려다 나도 계속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보통은 말이 끝나기 전에 지레짐작해서 끼어들거나 그 이야기 때문에 생각난 다른 이야기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꺼낸다. 처음에는 참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목소리를 높여 원래 말하던 주제로 방향키를 돌리려 애쓰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남는 건, 허무함. 왜냐하면 이건 요만큼의 교감도 하지 못한 우스꽝스러운 평행 독백이니까.



5분도 집중 못하는 투머치 멀티태스커

너무 바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누군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는 동안에는 거리를 둔다. 상처 받은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은 배려나 매너를 챙길 여유가 없다. 통화만 하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친구가 그런 타입이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게 버릇되다 보니 눈 앞 상대와의 대화에 통 집중하지 못한다. 나야 익히 아는 터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최근 고백을 듣자 하니 누군가가 같은 이유로 폭발한 것 같다.

마그마가 들끓었던 건 일하면서 친해진 거래처 상무님이었다. 최근 독립해 회사를 차려 대표가 된 그 분은 일을 제안하려 했는데 이 친구가 너무 바빠 좀처럼 미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사무실로 몸소 찾아온 구 상무 현 대표님. 언제나처럼 친구는 이 일하다 저 일하고 전화받고 다른 거래처 담당자들의 메신저에 답하고. 일부러 찾아온 상무님과의 대화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자리를 옮겨 다니며 폰만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분은 진심으로 크게 화내고 박차고 일어섰단다.

"나 너무 황당했잖아."

맙소사.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구나. 이 말을 듣고서야 왜 우리가 통화하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지, 대화를 하는 만큼 친밀감이 쌓이지 않는지, 그집에서 모임을 해도 계속 이어지지 않는지 이유를 말했다.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상대의 말을 끊는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앞에 있어도 5분 이상 집중하지 않으니 함께하는 게 아니고, 한 번은 만나도 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데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네가 네 시간이 아까워 남의 말을 중간에 자른다면, 다른 사람도 너한테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워지는 거야.'



문장에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쇼호스트

반대로 절대 '잠시 멈춤'이 없는 친구도 있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끝없이 말을 이어가는, 마치 한 문장이 구구절절 몇 줄씩 이어지는 지방 사찰 안내판 같은 친구. 가보지도 못한 아우토반 위 자동차 조수석에 앉으면 이런 기분이 들까? 정신이 혼미해지고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아득해진다.

마찬가지다. 사람은 또 착해. 착해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경청의 선수인 다른 친구는 구석구석 추임새를 넣어준다. 이미 말의 마취총에 맞아 몽롱해진 나는, 맥락을 놓치지 않고 듣고 있는 친구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만나면 늘 이런 패턴이다. 그러다 경청의 선수와 나는 드디어 쇼호스트 스타일 친구의 문제점을 솔직히 지적했다. 자꾸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들어와서 본인으로 주제를 돌린다고. "내가?" 이 친구 역시 모르고 있었다. 아니 경청을 모르는 문제를 지적당한 적이 있었지만 고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이 친구는 모두에게 몹시 사랑받는 친구다. 이날도 친구가 자꾸 줄어든다고, 외로워진다는 고백에 괜찮다고 친구는 양보다 질이라고 다독이면서도 경청의 필요를 이야기한 것은 다들 친구로서 그녀를 사랑해서였다. 서로 진심을 아니까. 우린 농담처럼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마 경청을 모르는 사람 중에 가장 사랑받는 사람일 거야."



고독한 미식가가 된 답정너st 불통래퍼

안타깝지만 남의 말을 끊는 사람 중에 가장 외로운 사람이 이 타입인 것 같다. 말도 빠르고 자기 멋대로 결론을 정해놓고 대화하는 그는 습관처럼 남의 말을  가로채서 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필요한 말을 하는 성격과 답을 이미 정해놓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해석하는 성격 때문에 그는 팀에서 '감 없는' 갑갑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팀원들은 그와 점심을 피하는 눈치였고 부하직원들과의 단체 톡방에서는 기계적인 대답조차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함께 이야기할 때면 항상 불안감이 읽힌다. 마음이 불안하니까 빨리 자신의 말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생각이 나면 바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 중인 상대에게 적합하지 않은 말을 하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그와 말을 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보다 숨이 가쁘고 소화가 안돼 피로감이 두배로 느껴진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밥 먹자는 약속을 피하고 요즘 속이 안 좋다고 둘러대고 있는 걸 알런지?... 이래저래 대화에 '나' 밖에 없는 사람은 피곤하다.



함께 대화하고 싶은 사람

결국 이들 모두가 외로워진 공통적인 이유는? 경청을 모르기 때문에. 성격이 급하거나 언제나 내가 옳거나 늘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거나, 남의 말을 끊는 사람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다들 여유가 없고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충분한 사람일수록 여유를 갖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상대의 이야기에서는 상대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독수리처럼 이야기를 채지 않는다. 자신이 말을 할 때도 부족하다 싶을 때쯤 멈추고 말보다 강한 침묵의 효과를 살리기도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말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침묵의 무게감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든다. 침묵은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중요한 표현이다. 종종 동조나 망설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관심이나 불편함, 다툼, 분노 등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굳이 불쾌할 수도 있는 말을 하기보다 침묵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아는 것이다.


언젠가 나 역시 남의 말을 끊는다는 지적을 듣고 놀란 적 있다. 후배와 함께 콘서트에 가기 전, 그녀의 고향 남사친도 합류해 밥을 먹었는데 내가 그 친구 말을 중간에 끊어 기분이 별로였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나 역시 앞서 말한 이들 마냥 자각하지 못했다. 우선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나이가 어리다고 그냥 우연한 만남이라고 은연중에 기본적인 매너를 무시했던 것이다. 내가 바로 감 없는 사람이었다. 그나마도 나를 알아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후배가 지적해준 거지, 더 꽉 막힌 꼰대였으면 지적을 들을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별로 소중한 사람이 아니면 에너지 쓸 필요 없이 안 만나면 그만이니.   


더 들어주고 덜 말한다


누구나 함께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렇다. 상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만은 함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친구인 것처럼 집중해주는 사람. 적절한 질문으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호감과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 사람이랑 이야기하길 잘했어' 하고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런 대화가 좋다. 그런 대화를 쌓으며 상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고 싶고 나 역시도 든든한 응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남의 말을 끊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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